[클럽하우스에서] '159전160기' 윤채영

"아직 우승 없는 더 많은 선수에게 나는 희망", 새로운 롤모델이 되다

무려 160경기 만에 우승해 제2의 골프인생을 시작한 윤채영이 승리의 'V'자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우승이 더 욕심난다."

'삼다수여자오픈 챔프' 윤채영(27ㆍ한화)은 지난 9년의 투어 생활 동안 스폰서가 끊이지 않았다. 수려한 미모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속이 탔다. 지난달 20일 제주 삼다수여자오픈에서 무려 160경기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눈물부터 쏟아낸 이유다. 미모에 출중한 기량을 더해 완벽한 조합으로 다시 출발하는 윤채영을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만나 9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9년 개근 '드디어 우승'= 윤채영이 바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원조미녀다. KLPGA투어가 흥행을 위해 2009년 처음 선발한 홍보모델 1기로 출발해 올해까지 6년 동안 줄곧 자리를 지켰다. 그야말로 외모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던 윤채영의 '159전160기'다. 삼다수마스터스에서는 특히 '골프여제' 박인비(26ㆍKB금융그룹)를 격침시켜 의미를 더했다. 인터뷰와 방송 출연, 우승이벤트로 정신이 쏙 빠져나갈 정도의 숨 가쁜 일정이 이어졌다.

사실 우승은 없었지만 윤채영에게는 일관성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9년 동안 시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이다. "시드전에 가기 싫어서 악착같이 골프를 쳤다"고 했다. 10년 전의 시드전이 여전히 악몽으로 남았다. "프로골퍼가 시드를 잃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2011년에는 19경기에 출전해 단 한 차례도 '컷 오프'를 당하지 않는 기복 없는 플레이가 돋보였다.

요즈음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올해는 벌써 컷 오프가 4차례나 되지만 전 대회에서 상금을 수령했던 2011년(26위)보다 상금랭킹(14위)이 높다. 성실함이 미덕인 줄 알았던 윤채영의 새로운 발견, '기회가 왔을 때 집중'하는 거다. 1타 차로 뒤지던 막판 17번홀(파3) 버디로 연장전을 만들었고, 연장 첫 번째 홀에서 기어코 우승버디를 잡아낸 자신이 대견스러울 수밖에 없다.

윤채영.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 "전지훈련서 뭘 했기에?"=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채를 잡아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친 유망주였다. 19세의 이른 나이에 프로로 전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 (나는) 우승을 못하지?"라는 생각이 지난겨울 독기를 품게 만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소속골프단 선수들과 함께 전지훈련을 하면서 예닐곱살 어린 선수들보다 체력이 뒤처진다는 것부터 문제가 됐다.

1주일에 2, 3회는 강력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나머지 날은 5km 이상을 뛰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고 그렇게 2개월간 담금질을 반복했다. 숏게임을 보완하는 등 기술 샷도 정교하게 업그레이드시켰다. 몸을 만들기 위해 식이조절도 가미했다. 입이 즐거운 것만 먹다가 체력을 키우기 위해 소고기와 오리고기 등 육류 단백질 섭취에 초점을 맞추는 식단으로 변경했다.

지난겨울이 '우승 없는 선수로 끝나고 싶지 않아' 혹독했다면, 이제는 '깜짝 우승으로 사라지는 선수가 되기 싫어서' 더 달리고 있다. 제주삼다수 이후 2주 만에 국내 최고 상금 규모의 한화금융클래식에 출전했다. 자신의 스폰서가 타이틀스폰서를 맡은 대회라 책임감이 막중했고, 일찌감치 태안으로 내려가 연습에 돌입했다. "우승하는 법을 배워 어서 대회를 치르고 싶었다"며 기분이 들떴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대회 준비를 가장 많이 했던 무대"라는 윤채영은 "18홀을 돌고도 모자라 9홀을 추가했을 정도"라며 "결과적으로 지나침이 이번에는 독이 됐다"고 후회했다. 골든베이의 악명 높은 러프가 걸림돌이 됐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러프가 무서워졌고, 샷에 힘이 들어갔다"며 "본 대회에서 러프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제 스윙을 가져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 "나는 희망이다"= 골프선수라면 으레 튼튼한 하체와 굵은 팔뚝이 트레이드마크다. 하지만 평상복을 입은 윤채영은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가냘파 보인다. 윤채영의 어머니가 "체격만 보면 약해 보이지만 그래도 근성이 남다르다"고 거들었다. "주니어시절 하루는 연습장에서 늦도록 돌아오지 않기에 빨리 오라고 했더니 '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하고 돌아가겠다'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어머니가 마흔에 늦둥이를 낳아 육아에 지쳐 있을 때다. "새벽에 엄마가 깰까봐 채영이는 밥 달란 얘기도 없이 조용히 집을 나갔다"며 "엄마로서는 고생하는 큰 딸에게 오히려 미안했다"고 회상했다. 10살 넘는 터울의 남동생 정원(16)과 여동생 성아(14)도 2년 전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선수지망생이다.

모든 경기를 동행하는 아버지가 가장 든든한 매니저이자 지원군이다. "아직도 우승을 하지 못한 더 많은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는 윤채영은 "나 역시 새로운 골프인생을 시작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2승, 3승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20대 초반에 절정을 이루고 은퇴를 고민하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롤모델이 등장했다.

윤채영 프로필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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