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공영방송 독립, 지배구조 개편만이 답이다

최성범 우석대 신문방송학 교수

레이스주의(Reithianism)이라는 용어가 있다. 영국 BBC의 초대 사장이었던 존 레이스 경(1889~1971)이 공영방송으로서의 BBC는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다는 원칙 아래 정립한 방송편성의 철학과 경영 방식을 의미한다.  레이스 경은 민간기업이던 BBC의 공사화를 주도했고 초대사장으로서 1938년까지 사장으로 재직했던 BBC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교육, 특히 다양한 견해에 대한 존중, 공정성, 보편성, 공익에의 봉사 등 오늘날 공영방송의 기본 가치로 여겨지는 원칙들을 정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초대사장으로서 11년간 재임한 데다 BBC에 미친 영향이 너무 커서 창립자로 불린다.  오늘날 BBC는 공영방송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이스 경의 사례처럼 BBC의 위상은 정치적 목적으로 방송을 이용하려는 정치권과의 투쟁의 산물이었다. 주요한 정치적 사건마다 보도를 둘러싸고 영국 정부(특히 보수당 정부)와 심각한 마찰을 빚는 게 다반사였다. 최근에도 공정보도의 성가를 높인 동시에 디지털화에 앞장서 언론과 경영의 양면 모두에서 BBC의 위상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렉 다이크 사장(2000~2004년 재임)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정부 보도자료의 근거가 엉터리라는 보도와 관련해 사임해야 했을 정도다. 이라크 침공 방침을 정한 당시 토니 블레어 내각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BBC를 가능케 한 것은 훌륭한 사장들과 구성원들이 노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BBC의 지배구조 덕택에 가능했던 일이다.  BBC는 영국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아니라 왕실의 칙허장(Royal Charter)에 의해 설립됐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 설립되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사회와 비슷한 경영위원회는 칙허장에 의해 설립됐으며 재정전문가, 노조출신자, 외교관, 교육자 등 외부의 공익대표를 포함해 구성된다. 게다가 다이크 사장이 정부의 압력으로 퇴진한 사건을 계기로 독립성이 훼손당하자 2006년 BBC 트러스트라는 상위기구를 설치, 정부 간섭을 배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오늘날 BBC의 위상은 이처럼 치밀하게 설계된 지배구조가 바탕이 됐다. 국민의 방송 KBS(MBC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눈을 돌려보면 정반대다. KBS는 방송법상의 한 장(제4장)이 설립 근거이고, 이사회는 방송통신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여당 몫 7명ㆍ야당 몫 4명)로 구성돼 철저하게 정치권에 종속되는 동시에 방통위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돼 있는 지배구조하에 놓여 있다. 방통위도 정부여당이 추천 지명하는 인사로 구성된 조직이다. 정치권이 겹겹으로 옭아매고 있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사의 3분의 2를 정부여당이 추천하고 최종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는데 방송사 사장에게 정치권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기대하는 게 오히려 무리가 아닐까?  이번 세월호 참사 이후 KBS는 청와대 외압보도의 논란에 휘말려 심각한 정당성 위기를 겪었다.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가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위상이 추락하는 상황은 국가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KBS가 장기적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뿐이다. 당장에 BBC 수준을 기대하긴 어렵더라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현행처럼 KBS이사 전원을 정치권에서 추천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한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은 요원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권 추천 몫을 최소화하는 대신 BBC의 경우처럼 공익대표 비중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발판이 된다. 또한 감독기구인 방송통신위원 선임에서도 공익대표 참여를 확대해야 함은 물론이다.  장기적인 국익을 위해선 공영방송의 독립성 제고는 너무 중요하지만 정치권에만 맡겨선 결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일이 아닐까? 최성범 우석대 신문방송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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