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과 내수 함께 늘리는 '최경환식 처방'의 딜레마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가계빚 늘리는 내수 살리기는 정말 상책(上策)일까. 부동산에서 답을 찾은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정책 방향을 두고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부동산 에서 번질 후방 효과가 내수의 물꼬를 틀 수도 있지만, 가계빚이 불어나는 건 내수 실종 만큼이나 위험 부담이 큰 탓이다. 나아가 대출 규제 완화에도 시장이 냉담하다면, 화살은 더 멀리 날아갈 수도 있다. '강한 부총리' 카드로 정국 반전을 노렸던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 케이스가 추가 되는 셈이어서다. 이런 부담을 안고도 최 후보자는 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경기 부양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한국 경제가 일본식 불황을 답습하고 있다"면서 "내수를 살리기 위해 과감한 정책 대응에 나설 것이며, 가계 소득을 늘리고 주택과 금융시장 정상화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과감한'이라는 표현에 방점이 찍혔다. 최 후보자의 구상을 구체화한 대응책이 바로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다. 그는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완화안에 대한 입장'을 묻자 "관계부처와 협의해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말했다. 지난 달 내정 직후 밝혔던 소신대로다. 최 후보자는 대출규제 완화가 가계빚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지금은 은행보다 제2금융권에서 15%를 더 빌릴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러다보니 가계대출이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늘었다”면서 "이게 결국 이자부담과 위험 부담을 더 높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장을 살리면서 실소유주가 은행권을 중심으로 대출을 받도록 가계 부채의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지, 집 투기를 조장하는 건 아니다"라는 배경 설명을 덧붙였다. 최 후보자는 답변에서 교묘히 논점을 흐렸지만, 집값 상승으로 투기가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구태여 가계 부채의 구조 개선을 부르짖을 이유가 없다. 그의 답변에는 이미 대출 규제 완화가 투자 혹은 투기 수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규제 완화로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가구에서 촉발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자 부담이 낮은 은행권 대출의 문턱을 낮추자' 논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게 자연스럽다. 한국은행은 이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이른바 '코드 맞추기' 논란이 일었던 국회 답변서를 통해서는 "DTI·LTV 규제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다소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는 표현으로 최 후보자의 의견에 보조를 맞췄지만, 부채 통계나 내부 보고서를 보면 가계 부채의 총량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 후보자가 국회에서 대출 규제를 풀자고 말하던 시각, 한은에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통계가 나왔다. 5월 중 은행권과 제2금융권 등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699조3000억원으로 어느덧 700조원을 넘보는 것으로 집계됐다. 4개월째 사상 최대치 기록을 고쳐쓰는 중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카드빚과 사실상의 가계 부채인 영세 자영업자의 창업·운영자금 등을 포괄한 실제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1분기 자금순환 통계 잠정치를 보면, 3월 말 기준 가계부채 총액은 벌써 1024조8000억원까지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방안은 양날의 칼이다. 한은은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 및 지속가능성 분석' 보고서에서 "주택 가격의 변동이 가계부채 증가율에 뚜렷한 정의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냈다.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던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분기별 시계열 자료를 분석해 "집값이 올라가면 가계빚도 같은 속도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높은 실물자산 의존도를 고려하면, 집값의 장기 침체를 방치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한은은 같은 보고서에서 "부채 총량 관리가 시급하다"면서도 "향후 5년간 주택가격이 매년 5%씩 떨어진다면 2016년 한계 가구의 비중이 전체의 1.6%, 부채 가구의 2.9% 수준으로 급증할 수 있다"고 썼다. 집값이 오를 때 늘어나는 부채를 관리해야 하지만, 집값이 너무 급격히 떨어져서도 안 된다는 양가적 결론이다. '최경환식 처방'의 딜레마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정책 효과엔 늘 명암이 공존한다"면서 "최경환 부총리 후보자의 부동산 대책도 역시 선택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의 후방 효과를 고려하면 최 후보자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면서도 "점차 금리 수준이 올라갈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 후보자의 처방에 대체로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전 장관은 "체감 경기가 나쁠 때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부총리가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 "결국 내수는 국민들이 경제 상황 개선을 피부로 느껴야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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