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80%가 "남녀간 직무능력 차이 없다"고 말하지만 차별 둬-男 직속상사 비율, 女의 3배… 임금도 64% 수준에 그쳐-女 직장인 절반 유리천장 경험…뿌리깊은 차별의식 없애야
[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 이지은 기자]# 1994년 A그룹 대졸 공채로 입사한 임인경(40ㆍ가명)씨. 첫 여성 팀장 등의 타이틀을 따며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현재 직급은 차장.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부장이다. 업무 능력은 남자 동기들보다 좋지만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승진에서 밀렸다는 게 주변 평가다. 그는 "이런 저런 얘기가 있지만 남자 동기들에게 인사에서 밀린 것은 사실"이라고 씁쓸해했다. # 건설사에 근무 중인 직장인 박수진(33ㆍ가명)씨는 지난해 말 해외 파견근무를 지원했다가 남자 동기에 밀려 자리를 내줬다. 이 회사는 순환배치가 원칙인데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밀린 것이다. 주변에서는 "여자가 오지에 어떻게 가겠냐" "남자 직원들이랑 문제 없이 지낼 수 있겠냐" 등의 얘기를 숨기지 않았다. 박씨는 "남자 동기는 돌아오면 인사고과가 좋아 승진할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막는 벽.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 부른다. 미국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1980년대에 만들어낸 이 용어는 현재까지도 여성차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된다. 우리가 그 존재를 인식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은 깨지지 않은 채 견고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취업자 수는 많은데 임원ㆍCEO 적다= 여성들은 여전히 취업시장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한 50.2%를 기록했다. 15세 이상 여성 인구(2151만3000명) 중 1080만2000명이 경제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률은 48.8%에 달했으며, 지난해 증가한 전체 취업자수 38만6000명 가운데 여성이 20만명으로 남자(18만8000명)보다 많았다. 하지만 윗선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유리천장으로 인해 승진에서 언제나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여성 직장인 326명을 조사한 결과 49.1%가 '유리천장이 있다'고 답했다. 직속 상사 비율도 '남성'이 72.7%로 '여성'(27.3%)보다 3배 많았다. 지난 2012년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종사자 500인 이상 기업 중 여성 관리자 비율은 16.09%에 불과하며, 여성 관리자가 한 명도 없는 사업장도 361곳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의 79%가 '남녀 간 직무능력 차이가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통계청 조사에서 2012년 기준 여성 임금은 월 165만4000원으로 남성 임금 월 256만9000원의 64% 수준에 그쳤다. 이은정 한국맥널티 회장은 "승진에서 밀리다 보니 임금에서도 차이가 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며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은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동등한 조건을 갖췄음에도 승진에서 남성들에게 밀리다 보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임원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분석업체 GMI레이팅스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한국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9%로 나타났다. 이는 45개 조사 대상국가 중 모로코(0%), 일본(1.1%)에 이어 낮은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인 11.8%보다 10%포인트가량 낮고, 신흥국 평균인 7.4%에도 크게 못 미쳤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여성이 출세하기 제일 어려운 나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리천장 생기는 이유도 가지가지= 유리천장이란 제도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기업 인사권을 쥔 남성들의 뿌리깊은 차별의식에서 비롯돼 굳어진 만큼, 유리천장을 만들 다양한 구실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된 박씨와 임씨의 사례처럼 교묘하게 인사고과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출산ㆍ육아 등 여성들이 피해가기 힘든 통과의례도 차별의 구실이 된다. 직장인 김희정(36ㆍ가명)씨는 1월 인사에서 승진하지 못한 게 아직도 분하고 억울하다. 남자 동기들은 모두 차장으로 승진했는데 자신만 누락된 것이다. '인사평가 기간 자리에 없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출산휴가를 떠나 12월 복귀했다. 육아휴직은 쓸 엄두도 못 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휴가를 다녀온 것이 승진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회사 인사 관계자에게 여러 번 항의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유리천장은 10~20년차 직장인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들에게도 존재한다. 이민정(27ㆍ가명)씨는 작은 중소기업에 입사했다가 황당한 경우를 겪었다. 대표는 이씨는 일반 사원으로 두고 허드렛일을 맡기고 그보다 2개월 늦게 입사한 남자 직원에게는 대리 직함을 달아주었다. 이씨가 보는 앞에서 그를 '본격적으로 키워주겠다'고 호언장담하기까지 했다. 같은 대졸에 비슷한 스펙임에도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유리천장 깨지려면 남성중심 문화 없어져야= 유리천장이 깨지기 위해선 남성중심 조직문화가 없어져야 한다고 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잦은 회식과 상명하복의 경직된 위계질서 등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물론 고착화된 인식도 바뀌어야 여성 리더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은정 회장은 "골프선수 박세리의 성공을 보고 박세리 키즈가 생긴 것처럼 여성 경제인을 이끌 여성 임원이 탄생하려면 먼저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남성중심 문화에 익숙해진 여성들도 스스로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선을 긋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해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남녀 모두 노력해야 할 가사와 양육을 여성의 일로만 특정하는 것도 문제다. 한 중소기업 인사 관계자는 "여성들은 양육을 위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으니 대신 남성이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승진 차별을 부른다"며 "주요직이라면 더욱 기혼여성보다 남성을 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2부 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산업2부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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