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22)
"어머나." 두향이 놀란 듯 입을 가렸다. "선비는 독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급히 도망을 쳤소. 그리고는 밭둑에 가서 숨어 있었지요. 여전히 가슴이 쿵쾅대고 있었는데, 옆에 가만히 보니 개구리 한 마리가 자기처럼 가슴이 벌럭벌럭하고 있질 않겠소?" "그래서요?" "선비는 개구리에게 물었소. '너도 독 팔다가 쫓겨온 거냐? 왜 그리 가슴이 벌떡이는 거지?' 개구리가 답을 할 리 있겠소? 아무 말이 없자 선비는 벌컥 화를 냈소. '네 이놈, 선비가 묻는데 어찌 대답을 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주먹으로 개구리를 때렸소. 그때 개구리가 '깨액' 했소. 선비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소. '아, 너는 깨를 팔다가 쫓겨온 거구나.'" "하하하." "호호호." 퇴계와 두향에게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그런 어리석은 선비라오." "생업에 무능하고 현실을 바라볼 줄 모르는 양반들에 대한 매운 풍자가 아니겠소. 이런 우스개들이 떠도는 것은, 민초들의 괴로움이 극심한데 그것을 풀어줘야 할 지식인들이 저토록 고지식하고 우매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니, 나도 부끄러워지는 대목입니다. 두향아. 공서어른께서 들을 만한 소화(笑話)를 네게 선물하였으니, 술잔을 한잔 올리는 게 어떠하냐?" "예. 나으리. 공서어른께 제가 한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주흥이 무르익자 공서는 퇴계에게도 한 자락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점잖은 학자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두향은 궁금해졌다. 조금 뜸을 들인 뒤에 퇴계가 말했다. "조금 야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번 해볼까 합니다." "야한 이야기라 하셨습니까. 거참 호기심이 동하는구료." 공서가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마을에 아름다운 과부 하나가 살고 있었지요.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는데, 예의도덕이 빼어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돌아간 뒤 그녀는 맹세를 했지요. '절개를 버리고 재가하는 것은 짐승이나 할 짓이 아니더냐. 나는 결코 다시 남자를 취하지 않겠노라.' 이러면서 몸에 항상 큰 칼을 차고 다녔다 합니다. 잘 때도 칼을 쥐고 잠을 잤지요." "보통사람이 아니로군요." 공서가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녀는 마을사람들에게 공표를 했습니다. '내게 다시 시집을 가라는 이가 있으면 그를 찌르고 나도 내 목을 찔러 죽고 말 것입니다.' 서슬 퍼런 이 말에 사내들은 감히 접근도 못했다 합니다. 그런데 사단이 생겼지요. 이웃마을에 서른쯤 되는 노총각 하나가 살았는데, 이 사람이 그 과부를 한번 본 뒤 반하고 말았답니다." "저런, 칼 맞을 일이 생겼네요." 두향은 걱정스런 얼굴로 답했다. "그러거나 말이오. 노총각은 상사병으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계책을 냈지요. 그는 칼을 품속에 차고 비가 죽죽 오는 날 과부댁을 찾아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과부는 큰 칼을 옆에 차고 나와 그를 맞았습니다. 총각은 이렇게 말했지요. '부인께서 개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가상한 기개이십니다. 실은 저 또한 같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저와 같은 맹세를 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과부가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총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지요. '저 또한 평소에 장가드는 것을 원치 않아, 그것을 권하는 이가 있으면 이것으로 그를 찌르고 내 목을 찔러 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칼을 꺼내 보였지요." "그랬더니요?" 두향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퇴계의 말을 재촉했다. "과부는 조금 의아한 눈빛으로 총각에게 물었습니다. '여자가 남편을 바꾸지 않는 것은 하늘의 도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부가 장가를 들지 않기 위해 칼까지 준비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어찌 그런 결심을 하였는지요?' 그러자 총각은 대답했습니다. <계속>▶이전회차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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