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13)

놀라기는 하림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가....? 불현듯 무슨 생각이 스쳐 돌아보니 어느새 옆에 있던 소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소연이 이장 운학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 분명했다. 낭패스러운 느낌도 들었지만 하림은 어쩌면 차라리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판은 깨어졌고, 모든 패는 뒤집어져야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이 자식이 정말 듣자, 듣자 하니까....!”일순 당황했던 최기룡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운학의 가슴팍을 겨냥해서 이단 옆차기로 발을 날렸다. 이를 악다문 폼이 독이 올라도 여간 바싹 오른 품새가 아니었다.“어이쿠!”운학이 가슴을 안고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머리를 땅에다 쳐박혔는지 머리 어디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사내는 입을 악다물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천천히 운학을 향해 다가갔다. 당장에 요절이라도 내어야 시원하겠다는 무서운 표정이었다. “그래, 죽여라! 죽여! 씨팔.... 너희들 모두 개다! 너희들 모두 개자식들이라구!”운학이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며 누구라 할 것 없이 돌아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급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말리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였다. 다시한번 귀청을 때리며 따앙, 하는 총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총소리에 놀라 모두 갑자기 돌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져버렸다. 돌아가던 영화가 멈춘 것처럼 모든 풍경도 일순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층집 영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운학과 사내가 싸우는 걸 보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참이었다.과연 영감이었다. 가슴패기에 안고 있던 영감의 총구는 어느새 운학과 사내가 있는 쪽을 향해 있었다. 진한 화약 냄새와 함께 영감의 총구에서 보일락말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운학을 향해 잡아먹을 듯 다가가고 있던 사내가 맥없이 무릎을 꿇고 옆으로 픽 쓰러진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오메! 사람 죽었다!”“영감이 총을 쏘았다!”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몸을 가리며 소리쳤다. 순간, 하림은 아무 생각 없이 쓰러진 사내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운학은 미처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여전히 땅바닥에 쓰러진 채 상반신만 비스듬히 일으키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의 허벅지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인지 총알은 사내의 허벅지 부근에 맞은 것 같았다. 누가 수건을 갖다 주어 아는 상식대로 먼저 지혈부터 시켰다. “일일구 불러요! 일일구!”하림이 소리쳤다.송사장 무리들도 그제야 잔뜩 겁먹은 얼굴로 쫒아왔다.“끙.”사내는 온갖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얼굴이 종이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설마하니 영감이 자기를 향해 총을 쏘리라고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로서는 뒤통수를 철퇴로 한 대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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