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같아서야 그녀를 위해 뭐라고 한마디 변명이라도 해줘야할 것 같기도 한데, 윤여사가 년자까지 써대며 말하는 판에 쉽사리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좋을 대로 생각하고, 좋을 대로 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일 지도 몰랐다. 그러자 윤여사의 말이 한 걸음 더 나갔다.“고년이 글쎄, 거기다가 기도원이니 뭐니 지으려고 난리 피우고 있단 말은 들었어요. 아, 남의 동네에 들어와 사는 주제에 지 까짓게 뭔데, 뭘 짓는다고 난리야, 안 그래요? 하림씨가 한 마디 해주지 그랬어요?”“아, 글쎄요.....”하림의 표정이 더욱 난처해졌다. 그녀가 내뱉는 거친 말들이 이층집 여자 남경희의 고상한 모습이랑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난 집에 괜히 부채질하는 시늉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윤여사 역시 동철이랑 일부러 자기를 찾아준 손님이라면 손님이었고, 민물 매운탕 집에 데려와 점심까지 사주러온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가타부타 니편 내편 가려서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 까닭이 없었다. 좋은 게 좋다는 것이 이런 때 쓰이는 말인지도 몰랐다.“쫓아내야지....”동철이 윤여사 편에 서서 멋모르고 추임새를 넣었다. 그런 동철이 모습이 더 미워보였다. 세기의 개똥철학자 똥철이 언제 저렇게 변했나 싶었나.“너 아직도 국회의원인가 뭔가 하는 작자 자서전 써주고 있나?”하림이 공연히 기분이 상하여 동철을 향해 삐딱한 어조로 말했다.“아, 그거....? 진작에 그만뒀다. 대신에 나 정식으로 취직했어.”동철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양 천연덕스럽게 답했다.“응. 잘 됐군. 어디에....?”“여기 윤여사님 운전수로......”“뭐.....?”하림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드릴 뻔했다.“진짜야. 그렇죠, 누님?”그러나 정작 윤여사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얼큰한 민물 매운탕 집 점심 회동은 대충 그렇게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어졌다. 심각한 이야기가 나올 듯 하다가도 용케 서로가 옆으로 살짝살짝 피해가며 농반 진반, 말장난처럼 서로를 떠보며 마친 것이었다. 하림은 윤여사가 뭔가 알면서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윤여사 역시 하림이 자신에게 감추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호주머니 속에 뭔가 감추고 있는 사람끼리의 대화는 겉돌게 마련이었다. “어쨌거나 머무는 동안 불편한 게 있거나 무슨 일이 있음 즉각, 전화 때리세요. 알겠죠?”돌아오는 차 안에서 윤여사가 백미러를 보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입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하림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하림은 짐짓 외면하는 척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다시 윤여사 화실이 있는 살구골 들어가는 입구에 접어들자, 하림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동네 사람들한테 자기가 왔다 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윤여사의 말에 따른 것이었다. 하긴 하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같이 다니는 모습이 왠지 껄끄러웠다.“야, 장하림! 담에 올테니까 이쁜 시골 아가씨나 하나 소개해줘!”차창 밖으로 동철이 인사 대신 공연히 영양가 없는 농담을 날렸다.그들을 실은 흰색 그랜저 꽁무니가 꾸불꾸불한 농로길을 따라 사라져 가는 것을 한동안 보고 있던 하림은 이윽고 돌아서서 터벅터벅 동네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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