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초입부터 무덥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탓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원전을 둘러싼 집단적 범죄가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도 국민들은 마음을 달래며 절전에 동참한다. 에어컨을 덜 틀고 전기 코드를 뽑는다. 그런 터에 이번엔 '비상시 가정용 전기부터 끊는 기존의 방침을 바꾸지 않겠다'는 주무 부처 장관의 말이 나왔다. 국민을 열 받게 하는 막무가내 소신이다. 지난 3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원전 부품 비리와 관련해 "국민께 괴로움을 드려 정부는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전력거래소를 방문해 여름철 전력난에 대비한 절전 대책의 우선순위를 잘 판단해 줄 것을 당부했다. 국회에서는 전력 수급에 위기가 닥칠 경우 맨 먼저 가정용부터 차단토록 돼 있는 한전 순환단전 매뉴얼이 '국민을 을(乙)로 보는 발상'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도 매뉴얼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어제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순환단전의 큰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주택-상가-산업체 순으로 돼 있는 현재 매뉴얼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일반주택, 연립, 아파트 등 주택용 전기를 비상시 단전의 1순위에 올려놓은 이유는 소규모 개별 소비 단위여서 혼란과 피해가 적다는 것이라고 한다. 2순위 순환단전 대상인 상업용에는 상가, 백화점, 놀이공원과 같은 다중 이용시설이 포함돼 있다. 백화점이나 놀이공원 등은 혼란과 위험이 따르고, 경제적 타격도 커 가정용보다 뒤쪽에 놨다는 것이다. 진정 '국민 행복'을 생각하는 정부의 발상인지 의심스럽다. 가정용은 전체 전기 소비의 14%에 불과하다. 놀이공원 하나면 수천 가구의 전기를 돌릴 수 있다. 단전의 마지막 대상인 산업용도 그렇다.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산업시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분명히 있다. 비상용 발전설비 등 상대적인 위기 대응 능력도 있다. 유연한 운용이 필요하다. 순환단전의 구체적인 매뉴얼도 공개해야 한다. 단전 우선순위가 그렇게 숨겨야 할 국가기밀인가. 알아야 대비할 수 있다. 정부는 어제 '정부 3.0'을 선포하고 정보 공개를 획기적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산업부와 한전이 '정부 3.0'의 해방구는 아닐 것이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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