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이석현, 이천수 볼보이에서 프리킥 파트너로...(인터뷰)

[인천=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2003년 7월 9일 울산 문수 월드컵경기장.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이천수의 국내 무대 고별전이 열렸다. 경기가 끝난 뒤 이천수는 차량을 탄 채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홈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사인볼도 나눠줬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13살 어린 볼보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강산이 변할 세월이 흐른 뒤, 그 볼보이는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프로 선수로 성장했다. 데뷔와 동시에 2골을 넣으며 가장 돋보이는 신인이자 팀의 주축선수가 됐다. 바로 옆엔 여전히 이천수가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젠 선수-볼보이가 아닌 팀 동료 관계라는 것. 물론 동경의 마음은 여전하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새 얼굴이다. 무엇보다 신인답지 않게 대범하게 경기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가. (웃음) 보통 데뷔전이면 좀 긴장도 하고 그런다는데, 난 좀 털털한 울산 남자라 그런지 오히려 설레더라. 경기 첫 패스를 굉장히 신경 쓴다. 일종의 징크스인데, 그래서 경남과의 개막전은 굉장히 쉬운 패스로 시작했다. 덕분에 편하게 경기를 치렀다. 데뷔전부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된데다 서울·성남 같은 강팀들을 꺾으면서 자신감까지 생겼다. 시즌 목표도 원래 공격 포인트 10개였는데 이제 10골로 수정했다. 데뷔 전부터 인천 최초의 신인왕 수상에 대한 욕심이 컸다. 그런데 얼마 전 신인상 대신 '영플레이어상'이 신설됐는데.정말인가? 처음 들었다. 아…. 당황스럽다. 이거 경쟁이 엄청 심해졌다. 요즘 (이)명주형도 잘하고 우리 팀에 (한)교원이, (문)상윤이, (구)본상이형도 있는데…. 아, (이)승기형은 나이가 안된다. 다행이다. (웃음) 물론 최초의 영플레이어상이 더 값지긴 한데 그만큼 더 힘들지 않나. 10골로 안될 것 같다. 엄살이 심한 것 같다. 올해 부활한 자유계약제도로 일찌감치 인천행이 결정됐다.선문대 1·2학년 시절엔 팀 성적도 좋고 청소년·올림픽 대표팀에도 뽑히며 인정받았다. 2학년 마치고 프로로 가려 했는데, 선문대 선수층이 얇다보니 학교에선 내가 졸업 때까지 남아있어주길 바랬다. 그러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2년간 경기력이 썩 좋지 못했다. 당연히 큰 기대가 없었는데, 작년 9월에 인천에서 자유계약 의사를 먼저 밝혀왔다. 생각지도 못한 제의였고, 행여 인천이 마음 바뀔까봐 덥석 계약했다.예년으로 치면 드래프트 1순위인 셈인데, 사실 다른 자유계약 선수들에 비해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편은 아니다.축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늘 그저 그런 선수였다. 체격이 문제였다. 지금도 큰 편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엔 항상 내가 제일 작았다. 정말 키가 천천히 컸다. 작은 체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다보니 기량 발전이 좀 늦은 편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선문대 시절 실력이 많이 늘면서 이만큼이라도 하게 됐다.
프로에 와서도 '아, 이건 통하는구나' 싶은 장점이 있나.슈팅이다. 내가 남들보다 발목 힘이 좋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강한 슈팅을 좋아한다. 작년엔 보스나(수원)의 슈팅 동영상을 자주 보고 따라했다. 근데 그게 보통 힘 가지고는 안되더라. (웃음) 그래서일까. 신인이 벌써 두 골이나 넣었다.서울전 데뷔골은 운이 좋았다. 슈팅이 정면으로 날아갔는데 골키퍼 손을 맞고 들어갔다. 얼떨떨한 나머지 세리머니도 제대로 못했다. 성남전 골은 달랐다. 원래 상윤이가 차기로 돼있던 프리킥이었는데, 왠지 느낌이 좋아 양보를 구했다. 사실 차기 직전 카메라 위치까지 확인해뒀다. (웃음) 골을 넣은 뒤 카메라 쪽으로 뛰어가며 '하트 세리머니'를 날렸다. 여자친구와의 약속을 지킨 거였는데, 정작 기사는 팬들한테 보낸 하트로 나갔더라. 그래도 여자친구한테 잘 말해서 '위기'는 모면했다. (웃음)
지금 인천엔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대표팀이 세 명이나 뛰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내 또래 축구선수 중에선 가장 복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봐라. 그라운드에서 서면 앞에 (설)기현이형과 (이)천수형이 있고, 뒤엔 (김)남일이형이 있다니. 초등학교 때 동경했던 선수들과 같이 뛴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천수형과는 훈련 끝나고 프리킥 연습도 같이 하는데, 확실히 볼이 떨어지는 궤적부터 다르다. 조언도 자주 해주는데 난 따라 찰 수가 없다. 타고 나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이천수는 직접 만나보니 어떤 느낌인가.포지션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배울 게 참 많은 형이다. 대선배인데도 먼저 다가와 친구처럼 대해준다. 현대중 시절 울산 홈경기 때 문수구장에서 볼보이를 했다. 아! 생각났다. 천수형이 유럽 진출하기 직전 경기에서 사인볼을 나눠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때 내가 형 옆에서 공을 건네주던 볼보이였다. 형은 아마 기억 못 할거다. 오늘 인터뷰 끝나고 훈련 할 때 슬쩍 가서 얘기해봐야겠다. (웃음) 요즘 높아진 인기, 실감이 나나? 특히 여성팬들 사이에서 블루칩이다.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분 한분씩 알아보긴 하신다. 얼마 전에 인천 선수단이 농구장을 방문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매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되게 추하게. 그런데 갑자기 어떤 분이 날 알아보셔서 햄버거 먹는데 사진 찍히고… 아휴. 이제 의식 좀 해야겠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이다. 인천이나 K리그 클래식에서 어떤 선수로 성장하고 싶은가.몇몇 언론에서 날 '인천의 이니에스타(바르셀로나)'라고 불러주는데, 난 이니에스타를 좋아할 뿐, 그와 비교도 안 되는 선수다. 악플 안 달리게 그런 표현 좀 쓰지 말아 달라. (웃음) 인천은 내게 기회를 준 특별한 팀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오래 남을 수도, 금방 떠날 수도 있는 게 요즘 축구계 아닌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인천팬들이 다른 팀으로 보내고 싶지 않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점이다. 그만큼 좋은 선수가 되면 팀의 레전드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팀에 큰 보탬을 남기고 가게 되니까. 그게 바로 내가 인천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노력 아닐까.
전성호 기자 spree8@<ⓒ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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