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사육사 김현미 씨와 알비노 버마 비단구렁이 '슬기'의 하루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똑똑! 슬기야, 잘 잤어? 누나 왔어……"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12월의 어느 날,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에버랜드의 동물사 문을 열고 들어서며 김현미(23·사진) 사육사가 큰 소리로 말을 건낸다. 커다란 수조 속에 늘어져 있던 알비노 버마 비단구렁이 '슬기'가 머리를 치켜들며 '쉬쉬' 경계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동물원에서 일한지 겨우 10개월 남짓된 앳된 얼굴의 김 사육사의 하루는 슬기의 잠자리를 정리하는 일로 시작된다.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두 손을 보온등에 한참 갖다 대 따뜻하게 만든 뒤 슬기를 옮겨야 한다. 온도에 워낙 민감한 동물인지라 차가운 손을 가져가면 아주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낸다. 슬기를 위해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목욕물을 준비하는 일도 김 사육사의 몫이다. 흔히들 뱀은 피부가 축축하고 끈적끈적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사실은 정 반대다. 뽀송뽀송하고 적당히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원의 뱀들은 온욕을 즐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뱀은 한 달에 한 번 먹이를 먹는다. 살아 있는 작은 식용 쥐를 한꺼번에 열 마리 이상 먹어 치운다. 뱃속에서 먹잇감이 서서히 소화되는 동안 뱀은 조금씩 살이 올라 매달 허물을 벗어내며 몸집을 키운다. 슬기가 행여 먹이를 제대로 먹지 않을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김 사육사는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다 퇴근하곤 한다.갓 탈피를 마친 뱀은 그 어느 때보다 뽀얗고 예쁜 자태를 자랑한다. 경력 25년차 안성은(46) 사육사는 "이 때가 비늘 촉감도 가장 부드럽고 눈빛도 초롱초롱해진다"고 표현했다.그렇다면 뱀은 자신을 돌보는 사육사를 알아볼까? 김 사육사는 "슬기가 냄새나 느낌으로 사람을 구별한다"고 자신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뱀은 후각과 촉각이 발달돼 있다. 김 사육사가 슬기와 친해지는 방법도 서서히 그녀의 손길에 익숙해지게 훈련하는 과정이었다.성격이 비교적 온순한 편에 속하는 슬기도 처음엔 그녀의 손을 피해 요리조리 빠져나가 애를 태우기 일쑤였다. 선배인 안 사육사가 미끄러지는 뱀을 안아 올려주고 떨어지지 않도록 핸들링 하는 요령을 알려줬다. 길이 2.5m, 몸무게 15㎏ 짜리 슬기는 이제 곧잘 김 사육사에게 자신의 몸을 턱하니 맡긴 채 시간을 보낸다.물론 매일 같이 슬기와 살을 맞대고 사는 김 사육사로서는 포기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향이 진한 화장품이나 향수는 당연히 안되고 손톱을 예쁘게 기르거나 반지, 시계 같은 장신구도 일절 착용할 수 없다. 슬기가 사육사의 몸을 타고 이리저리 기어오르는 동안 자칫 보드라운 비늘이 긁히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이제 내일이면 24살이 되는 뱀띠 아가씨 김 사육사는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새해가 뱀띠 해인만큼 뱀을 보러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많아질텐데 슬기가 아픈 곳 없이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제가 직접 돌보고 먹여서 키운 동물이 다른 분들께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뱀띠 여자와 비단구렁이가 만났으니 무서울 것도 없겠죠? 오셔서 직접 만져보셔도 돼요."
용인=조인경 기자 ikj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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