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섭 비알코리아 제품개발본부 과장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네모난 케이크 상자를 열면 항상 평평한 모양의 원모양 케이크였다. 생크림이냐 버터크림이냐 혹은 고구마냐 치즈냐 등 재료와 장식에만 차이가 날 뿐 디자인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네모이거나 원. 딱 두 가지였다. 3차원 입체는 안 되는 걸까?199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돔 모양의 케이크를 선보인 파티셰가 바로 현정섭 비알코리아 제품개발본부 과장이다. 현 과장은 “유럽에서 돔 형식은 왕실을 상징하는데 국내에서 돔 케이크를 처음 접한 고객 반응은 완전 뜻밖이었다”고 회상했다. '독특하다''개성 있다'는 말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대답. “케이크가 무덤이네?” 그만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현정섭 비알코리아 제품개발본부 과장
올해 나이 37세. 스무 살 때부터 제빵을 업으로 삼아 벌써 17년째 케이크 만드는 일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 과장은 '케이크는 감동'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감동은 '생각지 못했던 새로움과 신선함, 여기에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정성'에서 비롯된다. 케이크를 만드는 동안에는 직접 디자인한 케이크가 누군가의 기쁜 날을 배가시켜준다는 즐거움에 취한 듯 빠져든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소명의식은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힘이 됐다. 지금도 누가 채근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현 과장은 밥먹듯이 야근을 한다. 그런 와중에 책은 손에서 떼질 않는다. 발췌독으로 하루에 10권씩 읽어 젖힌다. 화장실 갈 때에나 잠들기 전 틈틈이 읽은 것이 이 정도 양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어느 부분을 발췌해 읽어야 하는 건지 감조차 오지 않는 게 사실. 그간의 내공이 얼마나 쌓여왔는지 알 만하다.덕분에 현 과장이 남들보다 한 걸음씩 앞서서 새로운 디자인의 케이크를 선보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이후로 누적판매 150만개를 돌파한 배스킨라빈스의 '와츄원' 케이크가 현 과장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와츄원 케이크는 6~9가지 조각 아이스크림으로 이뤄져서 하나의 케이크에서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절단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라 딱딱하게 언 상태의 아이스크림을 자르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커터기까지 도입했었다는 후문이다.현 과장은 “매장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오는 고객들을 보니 31가지 제품 맛을 최대한 다양하게 다 맛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면서 “패밀리사이즈 큰 통에 이것저것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꾹꾹 눌러 담는 것을 보고 '케이크 하나만 먹어도 배스킨라빈스의 31가지 맛을 다 볼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됐다”고 제품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그러나 3년 동안 매달렸을 정도로 제품으로 구현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수지타산도 맞지 않아 망설이던 차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현 과장을 불렀다. 허 회장은 파리바게뜨를 론칭할 당시를 떠올리며 “파리바게뜨를 만든다고 할 때 거의 모든 임원진들이 반대했다”면서 “그러나 창의력 있는 인재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때 포기했었더라면 지금의 파리바게뜨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기를 북돋았다.올해 배스킨라빈스에서 새로 나온 큐브형 조각 아이스크림 케이크 '러블리큐브''해피큐브'도 역시 현 과장이 개발해냈다. 현 과장은 “후배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은 '생각대로 된다'는 것”이라면서 “중동에서도 비알코리아의 와츄원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상상한다. 생각의 전환이 나날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렇게 된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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