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준골프전문기자
양용은이 2009년 PGA챔피언십 최종일 18번홀에서 타이거 우즈를 꺽고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환호하고 있다.
▲ 무기는 "잡초 같은 생명력"= 양용은의 트레이드마크는 잡초 같은 생명력이다. 아마추어시절부터 국가대표 등 '엘리트코스'와는 거리가 멀었고, 1996년 턱걸이로 한국프로골프투어(KPGA)에 진입해 이듬해인 1997년에는 상금랭킹 60위로 간신히 투어카드를 유지할 정도로 초라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레슨의 유혹을 뿌리치고 혹독한 연습과 대회 출전에만 전념해 마침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프로에 입문해 6년이나 지난 2002년 SBS최강전에서 생애 첫 우승을 신고했지만 다시 일본을 거쳐 PGA투어에 입성하는 등 끝없는 도전을 펼쳤던 까닭이다. 그동안 국내, 외에서 통산 11승을 수확했고, '빅스타 킬러'의 성가를 높였다. 2006년과 2010년 한국오픈 등 국내 무대에서 3승, 그 사이 일본에서 4승(2004년 선클로렐라클래식, 요미우리메모리얼오픈, 2005년 도카이클래식, 2006년 산토리오픈)을 일궈냈다.2006년 EPGA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하면서 월드스타로 도약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의 간판스타가 '지옥의 레이스' 퀄리파잉(Q)스쿨까지 거쳐야 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2009년 3월 혼다클래식에서 기어코 PGA투어 첫 우승을 신고하며 '이기는 노하우'를 축적했다. 8월 PGA챔피언십에서는 당대 최고의 빅스타 타이거 우즈(미국)와의 맞대결을 승리로 장식해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 실수는 빨리 잊고 "다음 목표를 바라 본다"= 양용은이 말을 이었다. "2006년말 진짜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을 때 이듬해인 2007년 한국과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투어를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아마 세계일주를 6번은 했을 거다. 그 때 사람들의 기대에 어떻게 부응해야 하나를 많이 고민했다. 결론은 선수는 선수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스폰서는 스폰서대로 제각기 할 일이 있다는 거였다. 주위의 시선을 내려놓으니까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은 '초심'이었다. "우즈, 매킬로이와 여러 차례 동반플레이를 통해 얻은 경험도 약(藥)이 될 것"이라는 양용은은 "매킬로이는 부드러운 스윙에 감각이나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우즈는 카리스마와 이기려는 열정 등이 강하다"며 "(나 역시) 스윙 등 기량에 대한 점검과 더불어 어려웠을 때를 돌이키는 강력한 승부욕을 가동하겠다"는 열의를 내비쳤다.한국프로골프의 발전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1년 내내 소송과 분쟁 등으로 어수선한 KPGA사태에 대해서는 "파벌싸움보다는 (임직원들이) 월급과 카드 내역까지 공개하는 투명한 운영을 통해 회원 전체의 권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또 후배들을 위해 "Q스쿨이 없어져 고생이 심해졌지만 우리 선수들 수준이면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양용은은 2013년 소니오픈부터 PGA투어 대장정에 돌입한다. 브루나이=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