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나쁜 아이돌 전성시대

‘휴대용 모텔’을 들고 다닌다. 20여년 선배인 원미연 뒤에서 부비부비 춤을 췄다. 야동을 보며 “세 겹 티슈” 든 자신에 대해 “누가봐도 숫캐”라고 랩을 한다. 지난 주 tvN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이하 < SNL >)의 호스트였던 박재범은 이 ‘19금 방송’에 한 획을 긋고 떠났다. 아이돌이 < SNL >에서 가장 수위가 높았던 양동근에 필적한 성인 코미디를 보여줬다. MBC <놀러와>의 이번 주 게스트 박보영은 고정 출연 중인 박재범에게 “나쁜 남자 스타일”이라 말했고, 함께 출연한 데프콘은 “그게 제이 팍 매력이야”라고 받아쳤다. <놀러와>에서는 함께 출연하는 권오중의 ‘19금 토크’를 들으며 웃고, < SNL >에서 NS윤지와 ‘휴대용 모텔’에서 들어가 야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코미디까지 하는 ‘나쁜 남자’ 같은 아이돌. 하지만 박재범의 팬들은 분노하는 대신 < SNL >의 동영상을 공유하고, 퍼뜨렸다. < SNL >의 시작에 H.O.T.의 멤버였던 문희준을 패러디한 캐릭터와 박재범이 댄스 배틀을 벌인 것은 상징적이다. H.O.T. 시절에는 존재할 수 없었던 ‘배드 보이’ 아이돌이 박재범의 시절에는 자신과 팬 모두가 즐기는 캐릭터가 됐다. <H3>배드 보이의 영혼을 가진 아이돌의 등장</H3>

반듯하고 유쾌한 이승기 같은 스타가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지만 지드래곤 같은 배드 보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이돌은 소속사의 트레이닝과 기획을 통해 탄생한다. 그만큼 팬들에게 잘 다듬어진 모습을 보여줬고, 소속사의 사생활 관리는 철저했다. 그들의 매력은 팬들에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러분”이라고 하는데 있었지 “여자친구 여럿 사귀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돌에게 나쁜 남자란 록스타처럼 상극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하지만 요즘 어떤 아이돌들은 록스타나 래퍼처럼 살려고 한다. 박재범은 자신의 랩 속에서 나쁜 남자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블락비의 지코는 올해 Mnet < MAMA >에서 다이나믹 듀오, 더블 K, 로꼬와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지드래곤은 ‘One of a kind’에서 자신을 ‘난 재수 없는 놈 좀 비싼 몸’이라 소개했다. 아이돌이 오만불손한 캐릭터로 활동하고, 마치 서구의 록스타처럼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선다. 배드 보이 아이돌이 새로운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지드래곤의 오만불손함과 박재범의 ‘나쁜 남자’ 같은 연애는 무대 위의 일이다. 블락비가 태국에서 경솔한 언행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더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아무리 악동 캐릭터라도 블락비의 유권이 팬카페에 연애 사실을 공개한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커 보인다. 대중에게 폭 넓은 인기를 얻는 것은 여전히 이승기처럼 선한 얼굴에 타인을 불쾌하지 않게 하는 유머감각을 함께 가졌을 때다. 다만 샤이 보이와 배드 보이는 더 이상 소속사의 기획력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박재범, 지드래곤, 지코는 모두 직접 곡을 만드는 싱어 송 라이터다. 그들의 곡과 가사는 생각과 행동방식을 반영한다. 배드 보이의 상상력을 가진 그들이 음악 안에서만 배드 보이로 살 수는 없다. 소속사의 활동이나 관리방식은 아이돌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마음대로 사는 래퍼처럼 행동하려 한다. <H3>시장의 룰은 바뀌고 있다</H3>

똑같은 아이돌 속에서 연인을 울리는 배드보이, 악당을 자처하는 아이돌이 튀기 시작했다.

H.O.T. 이후 아이돌 그룹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을 장악하다시피했다. 시장 점유율은 점점 높아졌고, 아이돌 아닌 가수들의 입지는 축소됐다. 그 과정에서 로커도, 래퍼도, 발라드 가수도, 심지어 배우와 예능인을 지망하는 청년들도 모두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들어가 아이돌 그룹이 됐다. 배드 보이 아이돌의 등장은 원래는 아이돌 산업 바깥에 있었을 법했던 가수들이 연습생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최근 Mnet <슈퍼스타 K>와 SBS <일요일이 좋다>의 ‘K팝 스타’는 이런 현상이 아예 산업 전체의 표준처럼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딕펑스 같은 홍대 인디 신의 밴드도 오디션을 보고, 합숙 생활을 하며, 메이크 오버를 시도한다. ‘K팝 스타’의 출연자들은 상당수 싱어송라이터지만, 그들은 우승하면 SM-YG-JYP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아이돌처럼 관리 받을 가능성이 높다. 생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클럽에 가겠다던 악동 정준영은 실력에 대한 논란까지 딛고 <슈퍼스타 K 4>의 TOP3에 들었다. 아이돌처럼 관리 받지만 캐릭터는 나쁜 남자. 그들은 아직 우승은 못하지만, 그 다음 쯤은 될 수 있다. 배드 보이 아이돌, 또는 아이돌 같은 배드 보이의 위치다.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자신의 교제 사실을 밝히는 아이돌. 박진영에게나 어울릴 성적 코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는 아이돌. 더 이상 아이돌이라고 정의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이돌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이 아이돌들의 등장은 아이돌 산업의 위기를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숨통이기도 하다. 슈퍼주니어의 은혁은 공교롭게도 박재범이 출연하는 <놀러와>에서 “요즘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그의 말이 어떤 뜻인지는 모두가 안다. SNS와 파파라치의 시대에 아이돌은 더 이상 사생활을 감출 수도, 공개된 사생활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심지어는 감추고 싶어하지 않기도 한다. 아이돌 중 일부는 연애를 했고, 그 중 일부는 공개 연애를 했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 이런 시대에 아이돌은 더 이상 무대 위의 왕자님이나 여신일 수 없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돌 시장이 정한 규범을 뛰어 넘을 만큼 막 나가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기는 어렵다. 지금 아이돌이 예전만큼 재미없어 보인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 SNL >에 몸에 문신을 새긴 채 휴지를 들고 야동을 보다 여자친구에게 들키는 아이돌이 등장했다. 시장을 뒤엎을 만큼의 파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 다른 아이돌들에게 시선이 가는 것도 분명하다. 똑같은 아이돌 속에서 연인을 울리는 배드보이, 악당을 자처하는 아이돌이 튀기 시작했다. 시장의 룰은 그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 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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