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미국 경제가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해 왔지만 최근 들어 다시 악화될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성장률이 2% 이하로 낮아진 반면 실업률은 8%선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제조업 관련지표도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드디어 3차 양적완화(QE3) 실시에 나섬에 따라 이제는 정치권이 답을 내야 할 차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22일자)가 보도했다.9월은 각국 중앙은행발 양적완화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장고(長考) 끝에 이달 6일 유로존 국채에 대한 무제한 매입 계획을 발표했고 13일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매달 4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채권(MBS) 매입을 골자로 한 3차 양적완화 실시를 밝혔다. 고용시장의 확연한 개선이 확인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사실상 무제한 매입 선언이었다. 그리고 19일에는 일본은행(BOJ)이 기존 자산매입프로그램 규모를 45조엔에서 55조엔으로 더 증액하겠다면서 가세했다. 투자자들이 손꼽아 고대하던 중앙은행들의 ‘돈풀기’가 시작되면서 증시는 즉각 반응했다.하지만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FRB는 앞서 두 차례나 양적완화를 실시했지만 위기를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 FRB의 달러 찍어내기를 ‘일시적 각성효과’라며 강하게 비판해 온 공화당에서는 대선후보 밋 롬니가 “당선되면 2014년 임기를 마치는 버냉키 의장을 재임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이같은 비판 여론은 크게 두 가지에 근거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같은 시중 유동성 공급으로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더 해롭다는 것, 두 번째는 지금같은 초저금리 기조에서는 양적완화를 시행해 봤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재반론도 가능하다. 양적완화 옹호자들은 첫째의 경우 물가급등은 초래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통화 완화정책이 물가 급등을 촉발시키는 것은 경기가 과열됐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처럼 경기가 가라앉아 충분히 여유가 있는 경우라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FRB는 정책기조에서 인플레이션 관리를 유난히 강조해 왔다. 때문에 투자자들은 물가상승률이 관리목표치인 2%를 넘어서면 완화정책은 즉각 철회될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최근 버냉키는 실업률 해결에 더 방점을 둠으로써 물가상승률이 2%선을 넘어간다고 해도 즉각 정책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 이는 가계와 기업들로 하여금 당장 투자에 나서게 할 촉매가 된다.둘째 지적은 반대론자들도 일정부분 동의한다. 지금과 같은 부채위기 국면에서는 가계와 기업 모두 채무을 갚기 위한 자금 모으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낮은 금리에 더더욱 유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FRB가 마냥 손놓고 있어도 된다는 핑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앞서 시행된 두 차례의 양적완화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은 됐다. 장기 모기지 금리가 낮춰지면서 주택시장에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내년 미국 경제의 대외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양적완화는 좋은 예방책으로 기능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ECB가 유로존 위기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최악의 상황인 유로존 붕괴 가능성만큼은 상당히 낮출 수 있다.이제 문제는 정치권이 이에 부응할 수 있느냐다. 그러나 재정 정책 측면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암담해지고 있다.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실시된 감세정책이 연말이면 만료되며, ‘재정절벽(fiscal cliff, 내년부터 시작되는 1조2000억달러 규모 연방예산 자동삭감에 따른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이 현실화된다. 이것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5%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로 미국 경제를 다시 침체에 빠뜨리기 충분한 수준이다.정치권이 재정절벽을 어떻게든 뒤로 미룬다고 해도 당장 내년부터 미국 경제는 더욱 빠듯해진 예산의 압박을 피할 수 없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반드시 재정절벽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잘 알고 있지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른데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마저도 신경을 쓰지 못하는 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사실 명확하다. 세제 개혁과 함께 시간이 갈수록 점차 커질 뿐인 연금이나 보건복지 등 지출 분야를 묶어둠으로써 중기적으로 세입을 늘릴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화당은 계속 고집을 꺾지 않는 부유층 증세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고 민주당도 보건복지 예산을 지금보다 축소하도록 양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합의하지 못한다면 버냉키도 도울 방법이 없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김영식 기자 gra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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