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시장에 가서 물었다...'도덕'은 얼마죠?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또다른 의문...'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인도에서는 6250달러만 있으면 합법적으로 대리모를 구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탄소배출시장을 운영해 기업들이 1톤에 13유로의 탄소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게 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요즘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지금보다 더 많기를 바란다고 해서 친구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친구가 하는 일을 해달라고 사람을 고용할 수는 있지만, 고용된 친구는 진짜 친구와 같을 수 없다. 노벨상도 마찬가지다. 노벨상 위원회에서 매년 노벨상 하나를 경매로 판다고 할지라도 돈을 주고 산 상은 진짜 노벨상과 같지 않다. 노벨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선(善)이 시장교환을 통해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좀 바꿔보자.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사면 안 되는 대상이 있을까?" 사람의 신장처럼 살 수는 있지만, 거래하면 도덕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재화들이 쉽게 떠오른다. 돈을 주고 산 신장이라도 신체에 거부반응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신장은 제대로 기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신장을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2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신장거래시장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노린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경제적 필요에 따라 불평등한 상태에서 거래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어떤 농부가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자신의 신장이나 각막을 팔겠다고 동의할지 모르나 정말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둘째는 신장거래시장이 인간을 여러 부속이 합쳐진 존재로 보는 변질된 인간관을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신장을 사고파는 행위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바로 이러한 '불평등'과 '부패'가 모든 것을 사고파는 시장사회의 이면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사회에 '정의'라는 화두를 던진 샌델 교수가 <왜 도덕인가>를 거쳐 이번에는 시장에서의 도덕성에 대해 면밀히 파헤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로 돌아온 것이다. 샌델 교수는 이 책에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욱 힘들다"며 시장사회의 '불평등'에 주목한다. 만약 요트나 스포츠카를 사고 환상적인 휴가를 즐기는 것이 부유함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수입과 부의 불평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 좋은 의학치료, 안전한 주거, 엘리트학교 입학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점차 많아지면서 수입과 부의 분배가 점차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 불평등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이 빈곤가정과 중산층 가정에 특히 가혹했던 것도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부패의 문제는 불평등보다 복잡하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 책을 읽게 하는 행위는 아이들을 독서에 힘쓰게 만들지 모르나 독서를 즐거움의 원천이 아니라 일종의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대학의 입학 허가를 경매에 부쳐 최고의 입찰자에게 파는 행위는 대학 재정에 보탬이 될지는 모르나 대학의 품위와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 상품화하면 가치가 변질되거나 저평가되는 분명한 사례도 있다. 입양할 아동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아동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 존재이지, 소비재화로 사고팔 수 있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간절하게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시민이 선거권을 파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시민의 의무는 개인 재산이 아니라 공공 책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샌델 교수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돈을 주고 살 수는 있지만 그래선 안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이 경제학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영역이 무엇인지, 시장과 거리를 두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사례별로 재화가 가지는 도덕적 의미와 가치의 적절한 평가방법에 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문제를 경제의 영역에 내맡기는 게 아니라 도덕과 정치의 영역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문제는 수 십 년간 시장지상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샌델 교수는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시장경제에서 시장사회로 휩쓸려왔다"고 진단한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도구'인 반면,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원하는가. 아니면 시장사회를 원하는가. 어떤 재화를 사고팔아야 할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돈의 논리가 작용되지 말아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저자가 책을 통해 던지는 이러한 물음들은 '시장의 역할과 그 영향력의 범위'에 대한 논의를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 사회에 꽤 묵직하게 와 닿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와이즈베리/ 가격 1만6000원 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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