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병신 같은 여자, 詩集같은 여자, 영원히 혼자 가지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같은 슬픈 여자.■ 시인이란 일생 동안 딱 시 한편만 발표하기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시인은 한 편의 시로 남는다. 물론 몇 편으로 남는 시인도 있겠지만 그게 더 행복한 건 아니란 생각도 든다. 한 편의 시로 남은 시인은 그 언어의 기념비 위에서 행복하다. 오규원은 저 시 한 편으로 가장 행복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대학 시절 나는 '한 잎의 여자' 폐인이었다. 하나의 진술이 앞의 진술을 부분적으로 부정해나갈 때 결국 수많은 진술들의 집합은 현실에서는 없는 '아름다운 무의미의 가건물'을 짓는다는 걸, 이 시는 기막히게 보여준다. 다 읽고 나면 그게 어떤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에선 보지 못한, 마치 언어의 그림자로 빚어낸 질그릇같이 '너무 괜찮은 여자' 하나를 만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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