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통곡의 벽'엔 무슨 사연이..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 현대카드ㆍ캐피탈 여의도 사옥에는 직원용 카페테리아가 있다. 모던한 인테리어와 자유로운 분위기도 인상깊지만, 한 쪽 벽면에 시선이 꽂힌다. 60개의 작은 LCD모니터가 있고, 쉴 새 없는 키보드 소리와 함께 텍스트가 올라온다. 얼핏 보면 유명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착각하게 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은 현대카드ㆍ캐피탈에 대한 민원과 불만이다. 거침없는 욕설도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올라온다. 현대카드 직원들은 이 화면을 이름하여 '통곡의 벽'으로 부른다. '제 카드 사용기간이 28일까지인데 가끔 통보도 없이 27일로 제멋대로 바뀌어 혼란스러워요. 이럴 때는 미리 알려 주셔야죠.'  '왜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카드 발급을 유도하는 겁니까? 기업 윤리에 의심이 드네요.' 이런 고객 불만은 일단 숨기고 싶은 게 기업의 심리인데도 현대카드는 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정태영 사장이 뉴욕타임즈 본사의 기사 제공 모니터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늘 고객의 목소리를, 그것도 불만을 기억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통곡의 벽'이 설치된 뒤 직원들 사이에서 '고객의 민원은 전담부서에서만 한다'는 마인드가 바뀌었다고 한다.  # 최근 현대카드의 한 임원은 정 사장으로부터 된통 혼이 났다. 정 사장이 "당신 부인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좀 알려달라"고 대놓고 말하자 부인의 카드 내역을 시시콜콜 말하다 꾸지람을 자초한 것이다. 정 사장의 테스트에 넘어간 것. 신용카드 사용 내역은 가족이 알려달라고 해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기업윤리를 강조하기 위한 정 사장의 '꼼수'였다. # 2006년 8월에는 현대카드ㆍ캐피탈의 팀 하나가 해체됐다. 해당 팀장이 팀원들과 함께 협력업체로부터 식사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회사 윤리경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도 허용치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이 적용된 것. 팀은 해체되고 팀장은 면직됐다.  현대카드는 최근 이런 에피소드를 담은 소책자 한 권을 발간했다. 지난 10여년간 회사 성장의 원동력을 정리한 '프라이드(PRIDE)- 현대카드가 일하는 방식 50'(이야기나무)'이다. 이 책에는 현대카드의 기업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14꼭지와 함께 현대카드만의 룰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고객정보 보안', '성희롱 예방조치', '협력업체와의 거래투명성' 등을 어길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겠다는 3대 무관용 원칙(Z.T.PㆍZero Tolerance Policy) 등이다. 또 기업윤리와 워크 스타일, 비즈니스 에티켓 등을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곁들여 300여쪽 분량에 풀어냈다.  특히 지난해 4월 고객정보 해킹사건이 터졌을 때 대응한 방식, 목동 아이스링크 화재로 취소된 '현대카드 슈퍼매치' 등 크고작은 위기 극복사례 등은 지금껏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인상깊다. 사장실에서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사옥 곳곳에 숨어있는 현대카드의 문화를 소개한 것도 흥미롭다.  이미 앞의 에피소드를 통해 알 수 있듯 현대카드의 기업윤리는 깐깐하기로 정평이 높다. 또 업무 스타일은 자유롭지만 완벽을 추구한다. 이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 즉 직관에서 출발한 제로카드 탄생의 비화와 10% 가능성으로 도전한 VVIP카드 '더 블랙'과 슈퍼매치의 성공스토리, 직급이 사라진 치열한 회의문화 등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신세대 직원들을 겨냥한 비즈니스 에티켓도 눈에 띈다. 사소하다고 흘려보내기 쉽지만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직장인이 지켜야 할 예절, 예를 들면 시간 약속, 책상 정리, 명함 주고받는 법 등에 대한 조언이 담겨있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이 책은 당초 직원끼리 공유하기 위해 발간된 책이다. 하지만 정 사장이 지인들에게 한 권씩 나눠줬다가 "책으로 발간해서 외부에 유통시키면 좋을 것"이란 권유를 받고 펴내게 됐다고 한다. 일반 독자에게 공개하는 걸 놓고 망설임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한 기업의 브랜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물론 결국은 기업문화까지 모두 고객과 공유된다는 믿음으로 책을 내게 됐다고 현대카드 측은 설명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프라이드(PRIDE)'라는 단어로 함축된 현대카드의 기업문화가 임직원들에게 끊임없는 열정을 생산하는 원동력이 돼 왔다"며 "이번 신간을 통해 경영자와 구성원들이 기업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더욱 건강한 워크스타일을 찾아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현대카드는 이 책의 인세 수입 전액을 소외 어린이들을 위한 미니 도서관에 기부할 예정이다.김은별 기자 silversta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김은별 기자 silversta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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