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자밀라와 관련된 장난이 수차례 이어졌던지라 슬며시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더군요.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못할 건 “종이보다 피, 더 세잖아요”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줄리엔에게 코리아란?’, 외국인들이 질리도록 많이 받았을 질문이었는데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아니지만 ‘내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니까, 아버지가 한국인이니까, 코리아는 당연히 내 나라’라는 줄리엔 씨의 진심이 느껴지는 답,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어요. 그런데요, 몇 년 전 KBS <미녀들의 수다> ‘설 특집 미남들의 수다’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카리스마 넘치는 격투기 선수 데니스 강의 동생이라는 선입견 탓이었을까요? 지금처럼 활짝 웃는, 마냥 밝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한국을 내 나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죠.물론 무슨 소리가 오가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여자 게스트들이 물색없이 들이대는 분위기에 당황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리 편안한 기색은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한 것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이 한국 여성의 애교라면서요? 고향 밴쿠버에서는 애교가 아기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라는데 이거야 원, 몇몇 여성들이 돌아가며 콧소리를 내고들 있었으니 불편하기도 했겠죠. 그런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이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지금이라고 모두 납득이 되는 건 아닐 거예요. 그래도 생경하고 마뜩치 않았던 부분조차 문화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이 내 나라로 바짝 다가오게 된 거겠죠.<H3>저도 매사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보려구요</H3>미스터 순대(왼쪽)도 두더지맨도 처음엔 줄리엔을 경계했지만 결국 친구가 된 것은 줄리엔의 긍정의 힘 덕분 아니었을까요?
사실 시트콤에서 ‘줄리엔’은 억울한 일을 두루 많이 겪은 캐릭터잖아요.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는 순재(이순재) 할아버지에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내상(안내상) 씨에게 이용도 배신도 숱하게 당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친구인 척 다가왔다가 입장이 달라지면 이내 등을 돌리고 마는 그들을 보며 부끄러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캐릭터와 본래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지 싶은 줄리엔 씨가 실제로도 비슷한 일을 겪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순재 할아버지나 내상 씨처럼 우리나라 물정에 어둡다고 제 맘대로 이리저리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오죽 많았겠어요. 아, 누구보다 강한 형님들 덕에 그런 일은 없으려나요? 그렇다면 천만다행이고요. 또 혼혈이라는 사실로 인해 캐나다에서는 당연히, 그리고 한국에서조차 차별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에 봉착하면 도망을 가든 싸우든 두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 후자를 택해왔다는 줄리엔. 어릴 적에는 몰라도 성인이 된 후엔 싸운다는 게 폭력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겁니다. 긍정의 에너지로 피해가지 않고 늘 정면 돌파로 맞닥뜨려 해결해왔을 줄리엔의 용기에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냅니다. 저 또한 줄리엔처럼 매사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려고 노력해보려고요. 그리고 아직 큰 소리는 내지는 못하지만 수줍게 되뇌어 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