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모두가 스스로를 응원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div class="blockquote">종종 적역을 넘어, 한 배우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 <댄싱퀸>은 20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흔들리지 않는 댄싱퀸의 왕좌를 지키고 있는 엄정화에게서 출발했다. ‘신촌의 마돈나’였지만 결혼해서 식구들 뒷바라지 하느라 무대를 잊고 있던 주부 엄정화는 이름마저 그녀의 실명을 내세웠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에 섰을 때는 누구보다 빛나야 하는 성인돌 댄싱퀸즈의 비너스로의 변신이 “조금도 어렵지 않고 편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눈에 띌 정도의 매력을 가진 여자. 생활의 냄새가 풍기지만 동시에 댄싱퀸으로서의 아우라 또한 겸비해야 하는 캐릭터를 그녀 말고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늘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온 엔터테이너로서의 엄정화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끽할 수 있는 영화 <댄싱퀸>과 함께 그녀가 여자로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서의 조언과 만인의 언니다운 품으로 짧은 시간을 온기로 채워준 ‘엄언니’와의 한 때가 읽는 이에게도 전해지길.
시나리오 단계부터 특정 배우를 생각하며 쓰는 경우는 있어도 <댄싱퀸>처럼 영화 자체가 한 배우에게서 영감을 받아서 기획되어 나온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엄정화: 너무 좋았다. 윤제균 감독님이 일상에 지친 주부가 꿈을 잃고 살다가 댄스가수가 되는 영화 어떠냐고 물어 보길래 아, 이건 나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감독님, 그건 저죠!’ 하고 기다렸다. 기분 좋게 시작한 영화고, 찍는 내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감동적인데다 무대에 올라간 장면도 있어서 기대를 많이 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시나리오보다 좀 더 살아있는 느낌이고 걱정했던 마지막 무대 장면도 좋았다.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은 꽤 긴 시간을 할애해서 무대 위의 엄정화를 담았다.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된 장면은 그 자체로 실제 댄싱퀸 엄정화에 대한 오마주 같기도 했다. 엄정화: 그 장면은 감독님에게 감사한다. 짧게 나갈 수도 있는 장면이니까. 그래서 걱정돼서 기술시사에도 가서 보고. (웃음) 감독님도 마지막 그 장면이 좋으셨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가수로, 배우로 활동해온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 <H3>“오디션에 나간다면 주무기는 느낌과 섹시”</H3>
그동안은 연기자 엄정화와 가수 엄정화를 명확히 구분 짓고 활동해왔다. 그러나 <댄싱퀸>에서는 주인공 이름 자체도 엄정화고, 댄스가수가 된다는 개인사마저 실제 가수 엄정화와 그대로 겹쳐진다. 엄정화: 이 시나리오가 조금 만 더 전에 들어왔어도 망설였을 것 같다. 이 전까진 배우로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 시기였으니까. 여러 작품을 하면서 어느 정도 배우로서도 자리를 굳혔다고 생각하는 시점이라 지금에 딱 맞는 영화인 것 같다. 또 다시 이런 작품이 들어온다고 해도 작품만 좋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선택에 구애는 없다. 우리나라도 <시카고>처럼 좋은 뮤지컬 영화가 나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배우들은 캐릭터가 배우 개인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하지 않나. 이번 영화의 엄정화 캐릭터는 실제 엄정화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엄정화: 특별히 경계했다기보다는 가수 활동을 했기 때문에 영화 속 모습이 너무 익숙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었다. ‘어, 저거 항상 무대에서 봤던 모습 아니야?’ 이런 반응에 대해선 고민을 했다. 춤에 있어서도 요즘 시청자들이 익숙한 아이돌의 동작보다는 우리 세대가 좋아했던 걸 응용했고, 음악도 90년대 초에 유행했던 음악들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요즘 무대에서는 볼 수 없지만 향수를 자극하는 쇼적이고, 글래머러스한 느낌에 중점을 뒀다. 활동하면서 시도해 본 적 없는 의상을 입고 나오고. 철저하게 영화에 맞춰서 무대를 진행했기 때문에 촬영하면서는 걱정이 없어졌다. 극 중에서 성인돌 댄싱퀸즈로 데뷔를 준비하는데 연기하면서 데뷔 때 생각이 많이 났겠다.엄정화: 요즘에는 많이 연습하고 데뷔하지만 내가 신인 때는 그런 시스템이 아예 없었다. 혼자 준비했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면에서 정말 시스템이 좋아진 것 같다. 연기하면서 데뷔하기 전에 느꼈던 설렘이나 너무 가수가 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은 열망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리고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를. 여기까지 오면서, 살면서는 바쁘게 지내왔으니까 고단하다고 느낀 적도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왕년의 ‘신촌의 마돈나’ 엄정화는 <슈퍼스타 K> 오디션을 통해 가수 데뷔의 기회를 얻게 되는데 오디션 경험이 있나.엄정화: 배우로서나 가수로서 한 번도 없다. 굉장히 바닥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시작이 좋아서 엄정화의 이름을 걸고 할 수 있었던 작품이 많았던 것 같다. 단역이나 조역도 없었고. MBC 합창단 오디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디션을 보고 와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거 붙으면 무엇이든 하리라 다짐하고, 이거 떨어지면 앞으로 뭐하지 다시 도전해야 되나 걱정하고, 정말 대단했다. ‘민들레 홑씨 되어’를 불렀는데 혼자서 연습하고 본 오디션이었으니까 특별히 준비한 것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을 정말 많이 했다. (웃음) 무슨 학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래 듣고 불러보는 게 다였다. 대학에 진학해서 음악을 전공하거나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다시 돌이켜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다. 지금은 Mnet <슈퍼스타 K> 뿐만 아니라 SBS ‘K팝 스타 오디션’이나 MBC <위대한 탄생>처럼 정말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만약 그 때의 엄정화가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어떤 걸 주무기로 내세우겠나.엄정화: 나도 궁금하다. 과연 내가 도전했을까 부터. 아마 꿈이 그 쪽에 있었으니까 도전해 보긴 할 것 같은데 무기로는 나만의 느낌과 섹시? (웃음)<H3>“20대에는 뒤도 안돌아보고 무조선 앞으로 갔다”</H3>
극중에서 엄정화는 주부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다가 딸에게 자극을 받아서 다시 꿈을 쫒게 된다. “엄마처럼 저렇게는 안 살 거예요”라는 딸의 말에 충격을 받는데 아직 엄마보다는 딸의 마음에 가까울 텐데 어땠나. 엄정화: 딸들은 그런 것 같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고, 엄마 닮고 싶지 않고. 엄마를 사랑하지만 너무 희생만 하고 어떨 때 보면 너무 억척스럽고,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으니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뜻언뜻 촬영을 하다가, 거리를 지나가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엄마가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가 참 싫더라. (웃음) 그런 느낌이 딸들은 다 있을 거다. 엄마가 너무 참고 사는 걸 보니까 화가 나지만 그렇게 사신 것도 다 우리 때문이니까 잘 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딸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엄)정화의 심정도 이해가 되더라. 딸한테 직접 그런 얘기 듣는다면 자괴감에 빠지면서 속상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할 거 같다. 아직 결혼을 못해봐서 아쉬운 게 자식을 둔 엄마의 마음,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는 되는데 가슴 속 깊이 느낄 수 없는 게 아쉽다. 댄싱퀸이 되기 이전에 엄정화는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 하는 보통의 기혼 여성들을 대변한다. 20대 초반에 데뷔해서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을 경험한 적이 없을 텐데 연기하면서 아쉽지는 않나.엄정화: 힘든 건 연기하면서 이게 진실된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그게 배우로서 하게 되는 고민이기도 하고. 엔딩에서 황정민 씨가 연설을 하는 와중에 내가 뛰어드는 장면이 있는데 그 날 초반에 감정이 잘 안 잡혀서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힘들어하는 남편 모습을 보니까 너무 속상하더라. 속상하다고 표현도 못할 만큼 마음이 아픈 게 느껴지더라. 연기하면서 실제로 그런 감정이 와줄 때 참 기쁘다. 그래서 연기하는 것 같고.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없는 부분은 연기를 해야 하지만 어쨌든 자기 안에서 감정이 나와야 한다. 계산 하거나 척을 한다고 해서 진짜로 가슴이 아프진 않으니까. 그래서 연기가 할수록 어렵다. 엄정화를 좋아하는 대중들은 단순히 그녀가 뛰어난 엔터테이너여서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서 먼저 삶을 열심히 꾸려나가는 언니, 선배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연예인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더 응원하게 되는 것 같고.엄정화: 그런 감정을 다 느낄 순 없지만 살면서 점점 더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인터뷰를 할 때도 그렇고, 어쩌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봐도 눈에 반가움이 있다. 그런데 그 반가움이 연예인을 봐서 반갑다기보다는 뭔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게 있어서인 것 같다. 어떤 친구들은 나를 보면 우는데 그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나한테도 전해진다. 그런 친근감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을 만나도 반갑고 참 좋다. 의도한 건 아닌데 고맙다. (웃음) 영화에서 20대 시절의 엄정화는 ‘신촌의 마돈나’로 화려한 청춘을 보냈다. 실제 20대 시절의 엄정화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정화: 음... 바쁜 사람? (웃음) 20대에는 뒤도 안돌아보고 무조선 앞으로 갔다. 정말 치열했고 너무 바빴다. 20대 시절은 거의 차 안에서 보낼 만큼 정신없고 힘들었다. 그 안에 여러 가지 시간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겪는 것처럼 그 시기에는 성장통이 심했다. 처음 겪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니까. 아파서 힘들고, 부딪치고 깨지고. 그래도 계속 올라가고, 계속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너무 좋았다. 힘들었지만 무대가 좋았고, 또 사람들 만나면 사람들이 좋았고. 그 안에서 힘들다고 울고 난리쳤지만 신이 났다.<H3>“스스로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하자”</H3>
그렇게 치열하게 20대를 먼저 통과해온 사람으로 지금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청춘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엄정화: 상황이 모두 다르겠지만 나에 대한 존귀함을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자기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것, 나는 그걸 잘 못했다. 계속 ‘아직도 넌 안돼, 넌 멀었어’ 계속 다그치거나 ‘내가 그렇지 뭐’ 이랬다. 항상 뭔가를 열망하면서 가지만 실망하게 되면 ‘내가 그렇지...’ 그런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지’가 아니라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네’ 나 스스로에게 응원하는 게 필요하다. 사랑할 때도 날 아끼지 않았다. 날 아끼지 않으니까 상대도 날 아끼지 않는 것 같다.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살아왔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 같은 생각은 드는데 우리 세대 여자들이나 살기 바빴을 때 알아서 커야하는 그런 세대들은 뭔가 하나씩은 다 아픔이 있고, 스스로 자기비하도 많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렇다고 자기만 너무 이기적으로 사랑하고 자기밖에 모르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응원하고 사랑해야지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좋은 것만 더 생각하면 좋겠다. 이건 너무 정답이지만 ‘난 왜 이러지’ 생각하다가 뒤돌아보면 해온 것도 있을 거다. 거기에 대해서 응원하고 긍정적인 걸 보는 게 진짜 답인 것 같다. 나도 한 없이 우울하게 땅굴을 파면 끝까지 판다. 근데 그림으로라도 ‘몇 년 후에 나는 이렇게 되어 있을 거야’ 생각하면서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계속 노력하다면 보면 언젠가 진짜 그 그림 안에 와있다. 참 추상적이지? (웃음) 너무 많이 듣던 얘긴 거 같아도 이게 답인 거 같다. 자신을 긍정하고 믿는다는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일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더더욱.엄정화: 사랑에 빠지면 자꾸 작아지고, 상대에게 헌신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기심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에 두었으면 좋겠다. 남한테 욕을 먹어도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하는데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 정말 사랑하는 데 있어서 힘들어진다. 사랑을 하면서도 자기가 사랑받고 존귀한 존재다 생각하면 달라질 거다. 상대가 날 버리면 어쩌지, 상대가 변하면 어쩌지 이런 게 아니라 ‘어? 너 변해? 그럼 나도 변해’ 이런 거 있지 않나. (웃음) 스스로 ‘나 너무 괜찮은 여자야’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좋은 것 같다. 최근 인터뷰에서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도 잘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무얼 하나.엄정화: 그냥 일상 즐긴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뭔가 특별한 걸 하면서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큰일 날 거 같고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쉬는 날에도 운동 가고 마사지 가고 또 뭘 하지 고민하다가 저녁에 뛰러 나가고 연습하러 가고 뭔가 계속 해야 했다. 심지어 낮잠도 안 잤다. 낮잠을 자면 내가 왜 이렇게 한심하게 시간을 보내나 싶었다. 좀 쉬어도 되는데! (웃음) 지금은 집에서 나가기가 좀 아까울 정도로 집에 있는 시간이 좋다. 마켓도 가고 책도 보고 음악도 찾아서 듣고. 그렇게 일상을 꽉꽉 채워서 살던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됐을까.엄정화: 안 바꾸면 내가 너무 힘들 거 같아서. (웃음) 그리고 나한테도 시간이 주는 변화일 거다.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예전에는 사랑만 찾았다. 사랑, 불타는 사랑을 해야지, 난 사랑을 못하면 죽을 거야 이랬는데 그런 열정적인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내 안의 사랑을 찾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 같다. 평생 그런 사랑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나도 찾아가는 중인데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제는 안달복달 하지 말아야지. (웃음)<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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