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이빈섬 '이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중에서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지 않는다. 방에 들어가 눕는 것이 답답해지는 나이가 있는 모양이다. 문턱에 걸려 그림자의 옆구리가 결리는 나이가 있는 것이다. 한사코 안방에 들지 않고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고 기우뚱한 집안과 같은 각도로 졸면서 밤을 보낸다. 텔레비전이 끝난 세상을 닫고 아버지는 천천히 어제 중단한 꿈을 상영한다. 식도암이 부어 식사를 줄이고 줄인 아버지는 소금덩이처럼 작아졌다. 젊은 아버지가 들고다니던 낡은 가방은 방 안에 있다. 언젠가 나는 그 가방에 들어가본 적이 있다. 아버지의 외유 속으로 들어가 나는 외국 영화의 탐정처럼 먼지낀 시간을 엿보곤 했다. 아버지가 건너갈 수 없는 방에 아버지 가방은 졸고, 아버지의 꿈은 거실에서 졸고 있다. (…) 거미줄 하나 천장에서 내려와 이승의 각도를 재는 동안, 아버지 가방이 인사하듯이 조금 기우뚱할 것이다.
이빈섬 '이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중에서■ 고향엔 기침 하는 아버지와 홀로 떠드는 TV가 어둠 속에서 고요를 가끔 흔든다. 어린 시절 말장난 삼아 외웠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불안불안한 마음 속에서 서러운 그림으로 돋아난다. 검버섯 아버지의 손을 잡아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거뭇거뭇 검버섯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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