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황진이 시조 (4) '어져 내 일이야'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 모르던가있으랴 하드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어져'는 감탄사이다. '으이그~' 정도 될까. '내 일이야'는 '내가 일을 처리하는 꼬락서니하고는!'이란 자학적인 멘트이다. 내가 마음 먹고, 그더러 있으라 그랬다면 어찌 사내가 가겠느냐 마는, 굳이 보내놓고는 그리워하는 이 심사는 정말 나도 모를 일이야. 여기엔 원칙과 실제 사이에 빚어지는 '차질'이 드러나 있다. 이 남자는 이쯤에서 끝낸다는 원칙. 그래서 쿨하게 정리했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찌질이처럼 자꾸 구차하게 미련을 쏟아내는 것이다. 마음아, 너는 왜 그렇게 못났니? 하지만 이 시조는 황진이의 못난 마음을 증거하기 위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 진짜 사랑의 본질, 그리고 마음의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여자 바람둥이는, 세상의 마음을 다 얻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1%도 진정하게 건네주지 못했다. 그렇게 자기관리를 해왔지만 허기가 왜 없겠는가? "보내고 나니 그립네." 사내들은 이 말에 다시 녹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콧대높은 여자도 가끔은 그리워하는구나. '마음을 빠져나간 마음'으로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그머니 보여주는 센스. 황진이는 과연 연애9단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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