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한 편이 한 복합상영관 전관에서 상영된다. 한국영화 제작사들은 외화에 비해 극장수입의 배분 비율(부율)이 낮다며 조정을 요구한다. 시장 지배력이 작은 영화의 제작사들은 조기종영과 교차상영으로 인한 피해를 받는다. 모두 국내 영화산업이 풀어야 할 해묵은 과제들이다. 영화 투자자, 제작자, 배급자, 극장 경영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20일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을 발표했다.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첫 걸음인 셈인데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김의석 영진위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극장 매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영화산업의 현실에서 상영과 관련한 거래 환경과 거래 관행을 만드는 것이 영화산업의 선순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영진위는 상영계약과 관련해 어느 일방의 손해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산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계약관행을 제안하기 위해 표준상영계약서를 제정했다”고 밝혔다. <H3>극장부율 권고안은 ‘배급사:극장=5.5:4.5’</H3>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이 다루고 있는 사안은 크게 5가지다. △계약 영화의 최소 상영 기간 보장 △교차상영 시 배급자에게 인센티브 부여 △부율은 정률 방식과 슬라이딩 방식 중 선택 △계약 영화 상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월별 정산 △무료입장 허용 또는 무료입장권 발매 시 배급자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을 것 등이다. 중소 규모 영화들이 교차상영과 조기종영으로 피해받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1주간의 최소 상영 기간을 보장하고 교차상영을 할 경우 배급자에게 교차상영일 수의 2배로 상영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부금율의 10%를 더하도록 했다. 극장 수입 정산도 현행 종영 후 45일 이내에서 1개월 단위로 지급하도록 권고했다. 또 배급자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는 무료입장권 발행 그리고 포인트나 마일리지 사용을 포함한 무료입장이 불가능해진다. 이 중 산업 주체들(특히 제작사와 극장) 간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부율이다. 현행 부율은 투자·제작·배급사와 상영관의 수입 분배 비율이 한국영화는 5대5, 외화는 6대4(서울 이외 지역은 5대5)다. 영진위의 권고안은 한국영화와 외화, 서울과 지방 상관없이 5.5대 4.5인 정율 방식과 초기에는 배급자가 많이 받다가 차츰 줄어드는 슬라이딩 방식이다. 슬라이딩 방식은 배급 측이 첫 주 80%를 시작으로 1주 간격으로 10%씩 감소해 6주차부터 20%를 받는 것과 첫 주 60%를 받고 2주 간격으로 10%씩 감소해 4주차부터 40%를 받는 것 두 가지다. 이번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실무 총괄책임을 맡은 김보연 영진위 영화정책센터장은 “영진위가 규제 권한이 있는 기관도 아닌 데다 표준상영계약서가 권고안일 뿐 법도 규정도 아니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들이 이를 따라하지 않는다고 후속 조치를 취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준이 있는 계약서가 있다면 합리성의 근거가 마련돼서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며 개선 효과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최근 개봉한 [트랜스포머3]는 한때 전국 스크린 수의 60%에 달하는 1300여개를 점유해 독과점 논란을 낳았다. 지난 2009년 개봉한 [집행자] 제작사는 조기종영과 교차상영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며 문광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H3>극장 측 “지방 극장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H3>극장 경영자 측은 대체로 영진위의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에 부정적인 분위기다. 부율을 조정할 경우 수입 감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율 방식을 적용할 경우 서울 극장으로선 한국영화는 5%가 감소하고 외화는 5%가 증가해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체 상영관의 70%를 차지하는 지방 극장은 수입의 5%가 감소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한국영화 투자·제작·배급사는 서울과 지방에서 5%의 수입을 더 받을 수 있게 되고, 외화의 경우는 서울 지역에서 5%가 감소하지만 지방에선 5%가 늘어서 전체적으로는 약 2% 정도 수입을 더 받게 된다. 권고안을 실제로 적용하면 누가 가장 이익을 보고 또 손해를 입게 될까.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영화 투자사, 배급사, 제작사 그리고 외화 수입사, 배급사 등이다. 수입 감소는 오로지 지방 극장의 몫이다. 한국영화의 경우 투자자와 배급사, 제작사가 극장수입 부금을 나누게 되지만, 미국 직배사의 경우 수입과 배급을 함께하고 있어 개별 업체별로 따지만 사실상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된다.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에 대해 이날 처음 듣게 된 지방 극장 경영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극장 관계자는 <10아시아>와 전화통화에서 “공신력이 부여되는 공적 기관에서 계약 주체들의 공청회를 열거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표준상영계약서를 발표했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극장에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형 멀티플렉스에 밀려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 극장은 영진위가 권고한 부율대로 조정할 경우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 관계자에 따르면 조기종영이나 교차상영의 경우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은 뒤 배급사들과 개별적으로 협의 하에 계약을 진행하고 있어서 문제될 것이 없지만 영화상영 수입의 5%를 포기하라는 것은 극장에게 불리한 측면이 크다. 권동춘 서울시영화상영관협회 부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10아시아>에 “권고안이기에 극장 경영자들이 크게 문제 삼는 분위기는 아니”라면서도 “극장 측과 배급사 측이 별 탈 없이 잘 해오고 있으니 부율 조정은 현실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영진위의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이 실행될 경우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업체인 CJ CGV와 롯데시네마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H3>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 실효성은 여전히 불투명</H3>부율 문제는 6대4를 요구하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5대5를 주장하는 서울시영화상영관협회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영진위는 5.5대4.5를 권고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를 실행할 경우 지방 극장들의 수입이 감소하고 CJ CGV, 롯데시네마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지배력이 더욱 커지며 미국 직배사 수입이 늘어나는 등 부정적인 결과가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 영진위 측은 “영화상영관 시설비 융자 사업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극장 측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 역시 예산 편성이 확정되지 않은 데다 10억 원 규모의 예산이 융자의 방식으로 얼마나 극장 측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김의석 위원장은 “상영관 업계가 불리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당초 상영 계약 관행이 제작 또는 배급업계에 불리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과정”이라면서 “배급사들이 가급적 경영 여건이 어려운 지방 극장들에게 표준상영계약서가 제시하는 부율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은 법적인 강제성이 없는 일종의 ‘모델’일 뿐이다. 부율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작가협회와 영화상영관협회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현재로선 부율 변동으로 인해 입을 수 있는 극장의 수입 감소에 대해 뚜렷한 대책이 없다. 영진위는 이날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 발표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준약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표준상영계약서가 현재 영화산업 내부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일까. 분명한 것은 이것이 한국 영화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책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사실이다. 10 아시아 글. 고경석 기자 kav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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