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대신 재능기부]김덕수 교수의 사물놀이 강의

김덕수(사진 맨 오른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연수원에서 경기여상 사물놀이반 학생들을 꼼꼼하게 지도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 이상미 기자]기말고사를 치른 학생들이 겨울방학만 손꼽아 기다리는 12월 넷째 주. 서울지역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고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는 대신 음악가와 소설가, 야구선수, 연극배우들이 직접 가르치는 문학ㆍ예술ㆍ체육수업을 들었다. 평소에 만나보기 힘든 유명 인사들이 교실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곽노현)의 '재능기부 운동'에 동참해 서울시내 각 중학교를 찾아가거나 자신의 작업실을 학생들에게 공개해 직접 지도에 나섰다. 시험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온 문화ㆍ예술ㆍ체육수업의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사물놀이 전설'의 생생한 현장 강의 = "칠채(사물놀이 장단 중의 하나)에서 끌어올려 제대로 맺어져야 육채가 사는거야. 쇠(꽹과리)가 앉을 때는 이렇게 몸을 틀어야지. 관객들을 함께 봐야 하잖아. 음악은 소리지만 공연에서는 귀와 눈이 50대 50이야. 관객들에게 더 즐겁게 보일 수 있어야지. 이것 봐, 땀도 안 났어. 이 정도 쳤으면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야지. 아무튼 잘 했다."키 170cm도 안 되는 땅딸막한 사내가 개량 한복을 입고 공연장 로비에 선 채로 앳된 여고생들에게 짧은 수업을 하고 있다. 1000여 명의 관중을 앞에 놓고도 웃으면서 저희들끼리 흥을 내던 아이들 21명이 한 명의 선생님 앞에서 숙연하다. 공연이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칼에 정리하던 경기여자상업고등학교 사물놀이반 대표 이희주(3학년)도 선생님 말씀에 다소곳하다. 이 사내는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남사당패의 마지막 후손으로 1978년에 고(故) 김용배 씨 등과 함께 최초로 사물놀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사물놀이의 산 역사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연수원에서 열린 교육ㆍ재능 기부 선포식에 재능기부자로 참석한 그는 축하공연으로 마련된 학생들의 사물놀이 공연이 끝나자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화장실을 간다고 했지만 실은 가르치던 아이들을 잠깐이라도 지도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크게는 공연에서 관객을 마주하는 마음의 자세를, 작게는 그날 공연에서 구절구절의 맺고 끊고 조이고 풀어내는 부분 부분의 잘잘못을 그는 다 얘기했다. 훌륭한 공연이었는데 칭찬은 조금 짜다. '내 자식'이라 아무래도 아쉬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김덕수 교수가 자식처럼 아끼는 제자들은 경기여상 풍물패 학생들만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중점학교 Arts-TREE'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6개 학교 125명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청소년들의 문화ㆍ예술 동아리 활동에 동참해 직접 가르치는 이 프로젝트에서 김덕수 교수는 전통예술 분야 프로젝트 마스터를 맡았다. 그가 서울시교육청의 재능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재능기부 선포식에서 공연한 제자들을 일일이 지도하는 것도 모두 하나로 이어진다. ◆강연보다는 공연에 가까웠던 2시간 = 20일 오전 10시, 김덕수 교수의 재능기부 강연회가 열린 서울 봉원중학교(교장 배인식) 강당은 김 교수가 이끄는 한울림 예술단과 봉원중 풍물패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풍물 아이들(우사풍)'의 합동 공연 열기로 뜨거웠다. 강당에 모여 신나게 떠들던 600여명의 학생들은 태평소의 우렁찬 울림에 숨소리를 죽이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30분 가까이 이어지던 흥겨운 장단에 상모 돌리기와 함께 막대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돌리는 버나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정승환(15) 학생은 막대 위에서 돌고 있는 접시를 공중으로 2미터 이상 던져 올린 다음 받아 박수갈채를 받았고, 현승훈 단원은 리듬체조의 리본보다 긴 끈을 단 상모를 멋지게 돌려 환호를 이끌어냈다. 30여분의 숨 가쁜 공연이 끝나자 김덕수 교수는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에게 사물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비, 바람, 천둥, 번개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담은 게 바로 사물놀이예요" 그는 학생들에게 꽹과리, 장구, 북, 징 4가지 악기의 소리를 차례로 들려주고는 "신나는 에너지인 신명을 느껴보라"며 설장구 공연, 삼도의 농악가락을 엮은 사물놀이 공연을 펼쳐 2시간에 걸친 한 편의 공연을 끝맺었다. 재능기부자 자격으로 첫 강연을 끝낸 그는 아직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로 "아이들이 전통문화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이 없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전통예술 전문가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풍물패 아이들에게 소중한 시간 = 공연을 끝낸 김 교수와 한울림 예술단원들이 찾은 곳은 강당 뒤편에 있는 풍물 동아리방. 그곳에서 이 학교 풍물패 학생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 함께 펼친 공연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상쇠를 맡은 2학년 한명성(15) 학생은 "한울림 예술단 선생님들이 일주일에 2번씩 동아리방을 찾아와 학생들을 가르쳐주신다"며 "세심하게 지도해주셔서 실력이 쑥쑥 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봉원중학교는 앞서 재능기부 선포식에서 공연한 경기여상과 함께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중점학교로 지정돼 김 교수와 한울림 예술단원들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고 있다. 일주일에 2번씩 아이들을 가르치러 이곳에 오는 현 단원은 "연주활동도 많이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때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음악을 통해 학생들이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웃음을 되찾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맛본다"며 즐거워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지켜만 보는 아쉬움 남겨 = 하지만 이번 강연에 아쉬움을 표한 학생들도 있었다. 김동명(15)학생은 "공연은 재미도 있었지만 약간 지루했다"며 "김덕수 선생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기대했는 데 한 번에 많은 학생들이 모이다보니 전체 분위기가 산만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노찬휘(14)학생 역시 "오늘 강연에서는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가 된 기분이었다"며 "무엇인가를 배웠다기보다는 즐겼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떤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히는 것일까. 김동명 학생은 "가수 이은미가 학교에 와서 성공하게 된 스토리도 들려주고, 노래도 불러주면 좋을 것 같다"고 희망사항을 밝혔다. 또 이해주(14)학생은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와서 총장이 되기까지 이야기를 들려주면 배울 게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kuerten@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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