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허정무 감독, 명장 반열에 오르다

[아시아경제 이상철 기자]8강 꿈을 이루는데 실패했으나 허정무 감독은 한국 축구에 길이 남을 명장 반열에 올랐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1954 스위스월드컵에 첫 출전한 뒤 56년 만의 쾌거였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이 홈 그라운드 이점 때문에 이뤄낸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꿈꿨다"는 박지성의 말대로 그 목표를 이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26일(한국시간)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 1-2로 졌으나 월등한 경기를 펼쳤다. 후반 45분 동안 주어졌던 무수히 많았던 득점 기회를 살렸다면 8강 진출도 꿈만은 아니었다. 패하긴 했으나 허감독의 용병술도 빛났다. 김재성(포항)의 깜짝 선발 카드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김재성은 61분 동안 8km를 뛰어 다니면서 우루과이 수비를 위협했다. 또 동점골이 필요했던 순간 이동국(전북)을 투입한 타이밍도 적절했다. 이동국은 최전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우루과이의 장신 수비수와의 제공권 싸움에서도 앞서며 수비를 압박했다. 후반 42분 이동국의 발을 떠난 슈팅이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면 8강 진출의 희비는 달라졌을 수 있었다. 허감독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쉬움이 가득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8강 문턱에서 졌지만 허감독은 패장이 아니다 특히 남아공에서 이룬 허감독의 성공시대는 국내 감독의 꿈을 실현케 했다. 국가대표팀 감독에 토종 지도자는 안 된다는 편견을 씻어냈다. 대한축구협회는 2001년 1월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움베르투 쿠엘류, 요하네스 조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등 5명의 외국인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베어벡 감독이 2007 아시안컵을 끝으로 사임한 이후 국내 감독의 능력이 부족해 외국인 감독이 계속 대표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히딩크 감독 이전의 마지막 토종 감독이 허감독이었기에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허감독에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허정무호의 성적에 따라 향후 대표팀에서 국내 감독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었다. "(잘 해야 한다는)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던 허감독은 "국내 지도자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국내 감독들의 희망을 이뤘다. 허감독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허감독과 지난 2008년 1월부터 남아공월드컵이 끝나는 7월까지 계약기간을 맺었다. 허감독은 지난 1월 남아공전지훈련을 마친 후 "한국이 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더라도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사임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토종 감독 가운데 역대 월드컵 최고 성적을 올린만큼 허감독과 재계약을 희망하고 있다. 게다가 당장 7개월 앞으로 다가 온 2011 아시안컵 본선을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자국에서 개최했던 1960년 정상에 오른 이후 반세기 동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아시안컵 우승은 원정 월드컵 16강 못지않게 축구인들의 숙원이었다. 짧은 시기 안에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 대표팀을 이끌기에는 시간이 역부족이다. 지난 2005년부터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거치며 꾸준히 코칭스태프 수업을 받았던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오는 11월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해야 해 대안이 아니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최근 "국내 지도자도 장기 집권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허감독은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며 국내 감독의 지도력 논란에 대한 편견을 깼다. 그리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오랫동안 한 지도자에게 국가대표팀을 맡기며 색깔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유럽, 남미 등 축구 선진국처럼 감독에 대한 의식 전환을 가져왔다. 이상철 기자 rok1954@<ⓒ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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