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대통령 '검찰 제도개혁 못해 정말 후회'

[아시아경제 김달중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출판 돌베개)가 23일 출간됐다. 자서전은 지난해 안장식 직후 유족들의 동의를 받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의 저서와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을 토대로 정리했다.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미완성 회고록을 기본으로 문체를 통일했으며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6개월에 걸쳐 작업을 완료했다.◆"사시합격,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노 전 대통령은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에 대해 "군사정권은 남의 재산을 강탈할 권한을 마구 휘둘렀는데, 민주정부는 그 장물을 되돌려 줄 권한이 없었다"며 "장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소유자가 정권까지 잡겠다고 했다. 그런 상황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이자니 너무나 힘들었다"고 회고했다.힘든 고시공부 생활, 그는 결혼 후 사법고시에 합격한 순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보다 기뻤다고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나도 아내도, 그 순간만큼 큰 성취감과 행복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그때만은 못했다."그는 부림사건에 대해선 "사실과 법리를 따지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이후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무료 변론보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조그만 농장이나 별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자식을 외국 유학이라도 보내서 공부를 다 하지 못했던 우리 부부의 한을 풀어 보자고 했던 꿈을 점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오랜 '벗'인 문재인 변호사를 만난 건 1982년. 그는 문 변호사를 "정직하고 유능하며 훌륭한 사람"이라며 "동업을 시작하면서 그런(법조계의 나쁜 관행) 것들을 다 정리하기로 약속했다.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고 말했다."국회의원이 되면 노동자들을 돕는 데 유리할 것이다." 그가 제도권 정치로 들어오게 된 이유다. 당시 김영삼 총재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5공비리특위 청문회에서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그러나 그는 1989년 3월, 상계동 철거민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밀려난 모습을 보면서 "시트 깊숙이 몸을 묻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두려웠다"며 "문득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의원직 사퇴를 고심했던 이유다.◆"YS '탁월한 보스'..DJ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고 하기는 어렵다"면서 "그러나 조직의 탁월한 보스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평가했다.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많은 국민들이 김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지도자가 아니라 친북인사 또는 용공분자인 것처럼 잘못 보았다"며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김 전 대통령은 해외에서 그런 것처럼 나라 안에서도 국보급 지도자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노사모에 대해 "나의 잘못과 흠결이 드러났을 때에도 나를 버리지 않았다"고 애정을 표했다.◆"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못해 정말 후회"=그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그러나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그는 또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고 밝혔다.때문에 그는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며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자서전 말미에 20년 정치인생을 회고했다. 특히 검찰 수사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감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줬다."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자서전을 정리한 유 전 장관은 "2009년 5월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며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고 말했다.김달중 기자 da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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