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잡는 해병의 유래는

한국군 최초의 단독상륙작전 통영지구전투서 승전보

해병대는 1948년 10월 여수ㆍ순천 반란 진압작전 당시 신현준 해군중령이 적진에 침투할 수 있는 상륙작전부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에게 건의 한 것이 계기가 돼 창설됐다. 이듬해 4월 15일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 격납고에서 해군 13기중 지원한 380명에게 일본군의 99식 소총과 무명천에 국방색 염색을 한 훈련복을 입히고 해병 1기를 만들었다.해병대는 이처럼 초라하게 시작했지만 전설적인 전투 승전보를 울리며 명성을 만들어냈다.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명성을 낳은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지구 전투, 전 장병이 일계급 특진한 진동리지구 전투, 인천상륙작전, 산악전에 유례없는 승리를 거두며 이승만대통령에게 무적해병 휘호를 하사받은 도솔산지구전투 등이 대표 사례들이다.

훈련내내 교관은 팀원들과의 단결력을 중요시하며 이는 임무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병대는 현재 수도 서울의 관문인 서부전선과 백령도,연평도 등에서 방어를 주임무로 하고, 유사시 적지에 침투하는 상륙작전을 전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해병대는 기동장비로 K-1 전차, KAAV 상륙돌격장갑차, K-200계열의 장갑차 등을 비롯한 59종을 보유하고 있다. 포병화력으로는 K-9 자주포 등 4종의 자주포와 3종의 박격포를 갖추고 있다. 2003년 징집제도 폐지후에는 지원자들로만 뽑고 있다. 현재 막내기수가 1094기다. 해병대는 2개사단과 1개여단, 연평도 방어를 막는 연평부대, 상륙군지원단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무보트를 해변에 일렬로 놓은채 기초체력을 다지고 있다.

 우리 해병대의 상륙작전 능력은 세계 해병대 보유국 50여개국 중 세 번째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이는 강한 훈련의 결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신병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해병대만의 상륙기습기초훈련, 상륙장갑차탑승훈련, 천장봉 행군 등을 받아야 한다. 이런 힘든 훈련 때문에 지원자가 적을 것이라는 것은 오해일 뿐이다. 일반장병 지원 경쟁률은 4대1이 기본이다.부사관과 장교 지원율은 7대1까지 올라간다.  여군지원도 늘어나 현재 100여명이 있다. 해병대 여군이 육군여군보다 창설이 빠르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해병대 여군은 1950년 8월 30일 입대한 해병4기중에 126명이 포함돼 있다. 육군여군 창설(1950년 9월 5일)보다 6일 빠른 셈이다.

교관의 시범아래 해병대 특유의 PT체조를 하고 있다.

 해병대출신 유명인사도 많다. 정계엔 홍사덕ㆍ김기춘ㆍ공성진ㆍ정병국ㆍ신학용의원이 있고,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박상범 전 국가보훈처장, 이희일 전 동력자원부 장관 등이 있다. 재계에선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 김무일 전 현대INI스틸 대표이사 겸 부회장, 김동렬 아세아시멘트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밖에 탤런트 임채무, 김흥국, 소설가 황석영씨, 해병을 내세운 영화 해안선 연출자 김기덕감독 등이 있다.  해병대는 일반인도 한운에 알아볼 수 있는 상륙돌격형머리, 팔각모, 붉은색바탕 명찰, 세무워커 등 독특한 점을 갖고 있는 게 특징이다. 세무워커는 상륙작전시 개펄의 흙이 묻어도 말라서 떨어지지 않도록 위장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용도다.

기초체력 도중 불시에 떨어지는 선착순은 꼴등이 들어올때까지 계속된다.

 해병대는 최근 5년 동안 그루지야, 수단 등 UN 정전감시단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포함,700여명을 해외에 파병한 바 있다. 특히 주 이라크 대사관 경비임무에서는 임홍대 전 이라크 대사가 해병대 인원을 교체하지 말아달라고 직접 부탁 할 정도로 철저한 임무수행으로 정평 나있다.

보트이동법중 장거리 이동을 하고있다.

PT체조 중간에 해병대 특유의 훈련인 배치기를 하고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사진제공=해병대 1사단<ⓒ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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