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더위가 찾아온 지난달말. 포항제철소엔 30도 정도의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1600도 용광로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숨이 막힐 듯한 더위보다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허덕이는 요즘, 뜨거운 열정으로 불황까지 녹여버리는 포항제철소에서 불황 극복 키워드를 찾아봤다.
◆하나. 확고한 의지= 포스코 역사관을 둘러보다보니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시설이 눈에 띈다. '롬멜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여진 양철지붕 지휘본부 모형은 처음 영일만 갯벌위에 세운 지휘본부다. 포스코 역사관의 홍보 담당자는 “박태준 명예회장이 이곳에서 직원들을 진두지휘하며 만약에 발전소 건설에 실패하면 바로 우측에 위치한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며 이것이 바로 1968년 창사 이래 포스코를 대표하는 ‘우향우정신’이라고 설명했다.박 명예회장이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제철소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무모한 투자'라는 지적이 많았다. 돈과 기술 자원 등 제철소를 건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어느 것 하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박 명예회장은 직원들과 제철보국(製鐵報國·양질의 철강재를 생산해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결의하며 우향우 정신을 강조했다.국내에선 누구도 투자에 나서지 않자 박 명예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고 일본에서 해법을 찾았다. 1969년 8월 '제3차 한일 각료 회담'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대일청구자금' 7370만달러와 일본상업은행 차관 5000만달러를 합친 1억2370만달러를 제철소 건설자금으로 조달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언제나 뼈를 깎는 고통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당시 불굴의 정신은 지금의 불황을 극복하는 데에도 필수조건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제철소 공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당시 현장사무소였던 '롬멜하우스'를 둘러본 후 나서고 있다.[사진: 포스코]
(왼쪽부터) 박태준 사장,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부총리가 포항 1기 고로 착공식에서 착송 버튼을 누루고 있다.[사진: 포스코]
◆둘. 녹색경영은 선택 아닌 필수= “여러분,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게 무엇인 것 같으세요?” 기자들을 태운 버스가 포스코 정문 내로 들어서자 홍보팀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누군가 “나무”라고 대답해 웃으려는데 직원은 “맞다. 포스코는 먼지와 모래바람이 아닌 나무를 회사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푸르다. 철강산업은 환경과는 상충된다는 기존의 선입견을 단번에 깨주는 모습이다. 그는 “포항제철소 3~40%가 녹지”라며 “환경 경영의 일환으로 전 임직원이 참가하는 1인 1나무심기 운동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포스코의 가장자리에는 우뚝 솟은 타워가 있다. 높이 75m의 이 타워 정상에선 포항제철소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포스코 환경센터가 위치한 환경타워로, 포항의 '환경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4조3교대로 1명씩 근무를 하는 환경타워는 24시간 환경 감시 및 관리를 총괄한다. 예전에 이곳은 제철소 사이로 지나가던 철도들의 통행을 관리하던 감시센터였지만, 포스코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곳을 환경감시센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공장 곳곳에 설치된 측정 장비는 먼지,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등의 수치를 측정한다. 포스코 직원은 “수집된 데이터는 저희 회사에서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 30분마다 환경관리공단에 전송된다. 포항 시내 전광판에도 표시된다”며 소개했다. 이외에도 포스코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스텍, 포스코 경영연구소 및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 체제를 유지하며 동향 분석 및 기술개발 등에 활용하고 있다. 또, 이를 기반으로 포스코는 매년 환경목표와 실행계획을 세워 실천하고 있으며, 금연 운동, 자전거 타기 운동 등 친환경적인 사업을 꾸준히 진행중이다.포스코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국제환경경영시스템(ISO14001) 규격 요건에 대한 시스템 적합성 여부에 대해 환경심사를 받아 그 실효성을 점검하고 있다”면서 “포스코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이어져왔고, 이제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셋. 어려울수록 주변을 보살펴라= 공부(포스텍), 운동(축구장), 축제(포항국제불빛축제) 등. 포항 곳곳에선 포스코의 손길이 닿은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다.포항제철소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직원은 축구전용구장 모형물을 가리키며 “포항제철 축구전용구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의 숨은 주역”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조직위원회 방문단의 한국 실사 당시 포항을 들러 “지방 소도시에 축구전용구장이 있을 정도면 유치능력은 검증받은 것이다”고 언급해 월드컵 유치에 적지않은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이 직원은 “내려가는 길에 꼭 구장을 감상하고 가라”며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펼쳐진 축구전용구장은 우리나라 축구의 역사와 발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포항스틸야드로 불리는 포항축구전용구장은 1990년 11월. 한국 축구역사상 최초로 준공됐으며 20여년간 ‘한국축구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10여분 동안 포스코 홍보 영상물을 관람했던 홍보관 왼편에 자리 잡은 소형 지형 모형물에선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포스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원 장학생으로 구성돼 있다”며 포스코의 아낌없는 인재 양성 정책을 설명했다. 포스텍은 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의 절반가량을 장학금으로 환원해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수업료 및 성적우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학생 전원은 기숙사 생활을 통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포스코는 또 2008년 수질개선 및 지역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중인 동빈내항 해도수변공원 조성공사에 총 300억원을 지원했다. 포스코와 계열사, 협력업체 등은 지난해 포항시 전체 법인의 법인세 납부액의 26%에 달하는 772억원을 냈다.◆ 넷. 창의력으로 미래준비= ‘자원(資源)은 유한(有限), 창의(創意)는 무한(無限)’ 포스코 정문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기자들이 탄 버스에 동승한 가이드가 이내 설명을 시작한다. "포스코 정문에 쓰인 글귀가 보이시죠. 저 글귀는 포스코 초대 회장이었던 박태준 명예회장이 당시 포항제철의 기업이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포스코인의 정신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2007년 5월30일 오전 11시20분. 포스코는 600여년의 용광로 역사를 다시 썼다. 포스코는 독자 개발한 파이넥스 공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쇳물을 세상에 선보였다. 새로운 철강 시대를 연 순간이었다.
포항 제철소의 상용화된 파이넥스 공장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은 전세계 철강회사가 그토록 원하던 꿈의 기술이다. 파이넥스는 용광로를 이용하는 기존의 제철설비보다 작업공정을 2단계 줄여 경제성을 35% 높인 반면 환경오염 물질은 획기적으로 줄인 '꿈의 제철기술'이다. 일반적인 제철소는 부스러기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용광로에 넣기 전에 덩어리 형태로 만들어 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파이넥스는 이런 중간 과정을 생략한 신기술이다. 이 공법을 통해 포스코는 철강 제조 공정을 단순화해 생산단가를 낮춘 것은 물론 굴뚝산업의 대표적인 업종이었던 제철산업을 친환경적 산업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게 됐다. 생산단가를 절반 이하로 낮추는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90%이상 줄일 수 있게 된 것.파이넥스 공법에 대한 외국기업의 기술이전 요구는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을 이전해 달라는 중국 일본 등 제철회사의 요구가 있었지만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판단하여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현재 세계적인 환경정책 변화와 법적인 규제는 어떤 산업도 피해갈 수 없다. 실제로 오는 12월 유엔 기후변화 협약에서 한국이 2013년부터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포스코의 기술개발 성과는 더울 빛을 발하고 있다.이 회사 관계자는 "파이넥스 공법 개발은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창의로 극복해온 포스코의 일면일 뿐이다"고 강조했다.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임선태 기자 neojwalker@asiae.co.kr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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