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김강우는 천천히, 꾸준히 상승하는 배우다. 2002년 영화 '해안선'으로 얼굴을 처음 알린 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천천히 비상하기 시작했다. 배우로선 늦은 나이인 스물다섯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한 계단씩 밟아가며 꾸준히 연기의 영역을 넓혀왔다.
한동안 흥행운이 따르지 않기도 했지만 2007년 말 개봉한 '식객'은 전국 300만 관객을 모으며 김강우를 흥행배우로 만들었다. "흥행은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김강우는 "흥행보다는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새 영화 '마린보이'에 대한 자신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박시연·조재현과 함께 출연한 '마린보이'(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 감독 윤종석)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전직 국가대표 수영선수 천수다. 팔라우에서 다이빙숍 차리는 게 꿈인 천수는 억대 도박빚을 지고 마약 사업가 강사장(조재현 분)의 제안을 받고 해상 마약운반을 시도한다.
◆ '식객'보다는 '마린보이'
'마린보이'의 천수는 '식객'의 성찬보다 훨씬 김강우의 야망에 가까운 인물이다. "영화 '식객'은 캐릭터보다는 이야기가 남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흥행과 별개로 배우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 김강우는 '마린보이'에서 그것을 해소하려 했다.
김강우는 '마린보이'를 가리켜 "흥행 가능성도 있고 캐릭터의 욕심을 낼 만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식객' 때는 저 자신을 싹 지우고 원작이 원하는 인물을 만들려 했다"며 "일단 흥행 먼저 생각하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다음 작품에서 시도하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김강우의 욕심은 공포영화 '가면'에서 드러났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았다. "너무 어두운 작품인 데다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작품이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마린보이'에서 김강우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는 탄력적인 인물을 선보인다. '식객'의 성찬이 원작에 갇혀 있는 인물이라면 '마린보이'의 천수는 여백이 많아 창조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김강우가 원하던 캐릭터인 셈이다.
◆ 응급실 두 번 실려가고도 촬영 강행
'마린보이'는 그에게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개헤엄밖에 못하던 상황에서 수영을 능숙하게 할 때까지 배워야 했고, 근육질 몸을 만든 뒤 계속 유지해나가야 했다. 그렇잖아도 예민한 성격이 더욱 예민해졌다.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죠. 물 속에선 육상보다 체력이 5배 이상 소모되거든요. 제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무리하게 열심히 연기한 탓에 응급실 신세도 두 번이나 졌다. 무리한 수중 촬영은 생명의 위협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욕심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응급실에서도 '어서 촬영장에 돌아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했어요. 겁을 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니 마음이 편해지던데요."
체력소모가 많은 역할이라 체력 유지는 김강우의 최우선 과제였다. 그는 "신경을 많이 썼는데도 한여름이 되니까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큰 신이 있는 전날에는 잠도 잘 안 오고 오한도 생기더라고요. 조재현 선배와 싸우는 장면을 찍기 전에는 체온이 섭씨 39도까지 올라갔는데 남몰래 링거 맞고 찍었어요. 여태까지 쉽게 찍은 영화는 없지만 쉽게 얻어먹는 건 내 운명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죠."
◆ '마린보이' 30대의 첫 영화
김강우는 '마린보이'를 가리켜 "흥행에서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중요한 전화점이 될 작품"이라고 자신했다. 30대 들어서 처음 연기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때 두 편의 영화 '가면'과 '식객'에 출연했고 이듬해 이 영화들이 개봉했다. 서른한 살 때 '마린보이'에 출연해 서른둘인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청춘성장영화 '태풍태양', 독립영화 '경의선', 상업영화 '식객' 등을 거치며 김강우는 조금씩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연기를 조절하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 20대의 김강우가 열정과 집념으로 인해 긴장돼 있었다면, 30대의 김강우는 이완과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20대의 욕심이 막연한 것이었던 데 반해 지금은 뭔가 내 것을 이루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노력한 만큼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김강우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다. "재능을 타고난 배우도, 머리가 좋은 배우도, 연기 테크닉이 좋은 배우도 아니다"라는 것이 그가 써내려간 자기 보고서다. 머리가 좋은 줄 알았는데 운전하며 음악도 못 들을 만큼 두 가지 일을 병행하지 못하고, 테크닉으로 연기를 하면 금방 티가 나는 배우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그러나 김강우는 "영화를 하며 철이 들고 인간이 돼간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서른두 살 배우 김강우의 현재가 '마린보이'에 담겨있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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