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일 문화·엄격한 규율·대만 연수 요구에
미국 내 구직자들, 부정 평가 ↑…4500명 인력必
미국 애리조나에 400억달러(약 52조3000억원)를 투입해 신규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최악으로 소문난 데다 경쟁사인 미 반도체 업체 인텔보다 보상도 적어 해결책을 모색하곤 있지만, 상황 해결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4일(현지시간) 미 포천지에 따르면 온라인 취업 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에서 근무 환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미의 '승인 점수(approval rating)'를 준 응답자는 TSMC 미국 사업부의 경우 27%로 나타났다. 응답자 3명 중 2명 이상이 일하기 힘든 회사라고 평가한 것이다. 애리조나에 또 다른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인텔은 같은 질문에 85%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TSMC는 애리조나에 400억달러를 투입해 반도체 공장 두 개를 짓고 각각 2024년, 2026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에 발맞춰 내린 투자 결정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두고 반도체 패권 경쟁에 있어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문제는 인력 확보다. 최근 십수년간 미국 내에서는 빅테크 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반도체 산업 인력은 부족한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의 투자 정책으로 2030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4만2000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 내에서 이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TSMC는 근무 환경에 대한 대만과 미국의 문화 차로 인력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TSMC는 애리조나 공장에만 4500명가량을 채용할 계획이다. 현재 600명의 엔지니어를 포함해 약 2000명을 고용했다.
포천은 소식통을 인용해 TSMC의 혹독한 근무 문화, 엄격한 규율, 장기간 해외 연수 의무 등으로 인해 미국인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우선 TSMC의 장시간 노동,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미국 인재를 붙잡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TSMC의 글래스도어 페이지에는 "사람들이 한 달 내내 사무실에서 잔다", "하루 12시간 근무는 기본에 주말 근무도 일상적. 워라밸 최악" 등의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TSMC에서 6년간 일했다는 한 엔지니어는 "TSMC는 업무와 관련해 합리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다고 하지만 엔지니어나 차장급, 부서 매니저급 정도만 가능하다"면서 "현실적으로 매니저가 더 상부에 의견을 내놓는 건 불가능한 분위기"라고 밝혔다. 또 초과근무 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징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TSMC의 전 세계 직원 이직률은 2017년 11.6%에서 2021년 17.6%로 급증했다고 포천지는 전했다.
또 TSMC가 석사 학위 이상의 고학력 직원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 인력 확보에 난관 중 하나로 꼽힌다. 2020년 TSMC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 내 직원의 60%, 관리자급 80% 이상이 석사 학위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미 로체스터공과대(RIT)의 샌토시 쿠리넥 교수는 "산업 내에 박사 학위 소지자가 필요하긴 하지만 모두가 박사일 필욘 없다"며 TSMC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TSMC가 대만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지급하지만, 미국에서는 경쟁사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TSMC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는 평균 16만달러를 받지만, 인텔에서는 이보다 3만달러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포천지의 설명이다.
TSMC 입사 후 대만으로 건너가 12~18개월가량의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구직자의 발길이 끊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연수 기간이 길어 가족들과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이를 꺼리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지정학적 긴장감 때문에 우려하는 직원들도 있다.
2021년 4월 TSMC는 미국에서 새로 고용한 600명의 엔지니어를 전원 대만으로 보냈다. TSMC 측은 포천지에 "그들은 이제 첨단 반도체 기술을 제대로 익혀 애리조나로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TSMC는 인력 확보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21년 전 세계 직원 급여의 20%를 인상했다. 또 미국 직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피트니스 센터 등 복지 시설을 마련하고 워라밸을 위한 활동도 진행하면서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포천은 전했다.
앞서 모리스 창 TSMC 창업주는 지난해 반도체 인재 부족으로 인해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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