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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속 사람들] 안구건조증 때문에 억울하게 맞아 죽은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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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속 사람들] 안구건조증 때문에 억울하게 맞아 죽은 선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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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조선왕조실록 속 기록에서 각종 옥사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지만, 가장 황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선비로 '김빙(金憑)'이란 인물이 손꼽힌다. 특별한 죄가 있거나 억울하게 연좌가 된 것도 아닌, 그저 안구건조증이 심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다 숨졌기 때문이다.


김빙은 조선 제 14대 임금인 선조 23년(1590년), 정여립의 난 사건 이후 벌어진 기축옥사(己丑獄事) 당시 어이없게 누명을 쓰고 죽었다. 정여립은 1589년 이미 자살한 이후였고, 선조의 명으로 그 시신을 국문장에 가져와 추형을 했는데 당시 형조좌랑으로 국문장에 나와있던 김빙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날 날씨가 매우 춥고 건조한데다 바람이 많이 불어 눈물이 났던 것. 평소에도 이미 눈병을 앓았다고 기록돼있다.


선조수정실록 24권, 선조23년 3월1일 기사에 따르면 "당시 조사(朝士) 김빙(金憑)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평소 눈병을 앓아 바람만 쏘이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립을 추형(追刑)할 때 김빙이 반행(班行)에 서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흐르는 눈물을 아무리 닦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논핵을 입고 국문을 받다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김빙은 역도를 위해 눈물을 흘린 것이 죄라고 탄핵을 받아 처벌됐으며, 곤장을 맞다가 죽었다.



실제로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가 앓은 눈병은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발생하는 '눈물흘림증'으로 추정된다.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각종 결막염, 각막질환 등이 심해지면 눈물이 정상적으로 배출되는 길인 눈물관이 폐쇄된다. 적절한 치료없이 방치되면 눈물이 눈물길로 흐르지 못하게 되며, 외출시 바람이 불면 반사적으로 급격히 눈물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이를 눈물흘림증이라 부른다. 눈물흘림증은 현대에는 조기 발견될 경우 안약 등을 처방받아 수일 안에 치료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안약이나 인공눈물이 개발되기 수백년전이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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