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논단] 키신저의 지정학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5초
뉴스듣기 글자크기
[논단] 키신저의 지정학
AD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 5월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폭탄발언을 한다. 러시아와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영토 일부를 할양하고 러시아와 평화를 구축하라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즉각 반발했다. 도대체 키신저는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


키신저가 15세 때인 1938년 유대인인 키신저 가족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다. 키신저가 태어나 자란 곳은 독일 지정학의 대부 카를 하우스호퍼가 주로 활동하던 바이에른주였다. 나치의 팽창주의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독일지정학이었다. 나치패전 후 지정학(geopolitics)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됐다.


그런데 독일 지정학의 검은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키신저가 ‘지정학’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다. 1968년 11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그가 연설과 저술에서 지정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신문과 여러 잡지에도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하게 됐다. 특히 저서 ‘백악관 시절(The White House Years)’에서 이 단어가 60여차례나 출현한다.


키신저는 미국에는 2차 세계대전 후 세 가지 전략적 전통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주의적 전통, 실용적 전통, 법률주의 적전통이다. 그는 이 점을 비판하며 미국에도 마한 (AlfredThayer Mahan)의 ‘시파워(sea power)’ 이론과 같은 지정학적 전통이 존재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이 지나치게 군사적이고 과도하게 이념적이라고 인식하고, 오히려 지정학적 세력균형을 통해 소련을 제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키신저의 지정학적 사고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1972년 미·중 관계 정상화다. 키신저는 "지정학적으로 소련이 중국을 지배하거나 혹은 중국이 소련 쪽으로 기우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말한다. 키신저의 전략적 통찰과 닉슨의 결단은 새로운 역사를 가능케 했다. 미·중 관계 개선은 냉전시대에 가장 큰 지정학적 사건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연대해 소련을 견제하는 구도가 성립된 것이다. 소련으로서는 크나큰 전략적 손실이었고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수확이었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키신저의 충격적 발언의 진의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발언 전체를 봐야 한다. 그는 러시아가 400년간 유럽의 일부였고 유럽 내 세력 균형의 한축이었다고 말한다. 결코 러시아가 중국과 항구적 동맹이 되지 않도록 서방 측은 러시아의 이런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이 부분이 키신저 발언의 핵심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항구적 동맹관계는 서방 측에 치명적인 전략적 손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를 서방 측 질서 내에 다시 편입하라고 그는 주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립적 다리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의 이런 인식은 중국을 미국과 서방 측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본다는 걸 전제한다. 과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였던 전략을 이제 거꾸로 뒤집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서방측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현실주의적 정치(realpolitik) 철학의 극명한 표현이다.


50년 전 중국과의 데탕트를 통해 소련의 세력을 약화시켰던 그가 이제 무섭게 굴기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포용하려 한다. 그런 큰 구도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그의 시각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궁금하다.



김동기 작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