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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바지 내린 '학폭 후유증' 아들은 공연음란죄?[서초동 법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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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뭔가요" 아들 '공연음란' 재판 대신 온 어머니
이웃 모녀에 특정부위 노출한 혐의
檢 "벌금·성폭력 치료" vs 변호인 "정신 건강 좋지 못해"
판사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로 예비적 공소사실 추가' 의향 檢에 물어

길에서 바지 내린 '학폭 후유증' 아들은 공연음란죄?[서초동 법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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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피고인, 박민성(가명) 피고인 본인 맞으세요?"(판사)


지난 3월9일 서울중앙지법 5층의 한 법정. 머리가 하얗게 센 노년의 여성 A씨가 피고인석에 들어서자 형사22단독 방혜미 판사가 이렇게 물었다. A씨는 재판을 받아야 할 청년 피고인이 아니었다. 빛바랜 검은 외투를 입은 그는 "제 아들이에요"라며 민성씨를 집에 두고 대신 출석했다고 말했다. 한손엔 아들의 공소장이 들려있었다. A씨는 "걔가 어릴 때 학교 폭력에 시달려서 이게 잘 안된다"며 손끝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판사는 A씨를 일단 피고인석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


A씨는 "그런데 얘가 공연음란죄라고 하는데 그게 뭐예요"하고 물었다. 판사는 "피고인이 직접 나와야 해서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공연음란죄는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상태에서 음란행위를 해 타인에게 수치감과 혐오감을 주는 것이다. 민성씨는 지난해 6월 서울 관악구의 한 빌라 앞 구석에서 밤늦게 바지를 벗고 담벼락을 향해 서 있다가 이웃 모녀를 향해 돌아서 특정 신체 부위를 보여준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다시 "그 죄명이 뭔지 모르니까 여쭤보는 거예요. 제가 '공연'이 뭔지 몰라서…"라며 "무슨 공연이에요"라고 질문했다. 판사는 "지금 말씀드리기가 여의치 않다. 국선변호사를 나라에서 선정해주겠다"며 A씨를 돌려보냈다.


지난달 27일 진행된 결심공판엔 민성씨가 직접 법정에 왔다. 그는 말과 걸음걸이가 느렸다. 변호인이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바지를 벗은 장소가 맞는지', '경찰에 신고받은 기억이 있는지' 등을 묻자, "길을 잘 몰라요", "말하기 싫어요"라고 천천히 답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신체 및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 꾸준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가족들의 보호가 필수적이다"고 호소했다.


잠시 고민하던 판사는 "경범죄 처벌법상 과다노출 행위를 한 것으로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할 의향이 있으실까요"라고 검사에게 물었고, 검사는 동의했다. 현행 형법 제245조는 공연음란죄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경범죄 처벌법 제3조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해 타인에게 부끄러운 느낌 및 불쾌감을 주면, 1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사는 민성씨에게도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네"라고 하자 방청석에서 A씨가 "쟨 경범죄가 뭔지도 모를 텐데…"라고 중얼거렸다.


검사는 민성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등을 함께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연음란 혐의가 무죄일 경우 경범죄처벌법 위반죄로 벌금 5만원을 선고해달라고도 했다.



반면 변호인은 "피고인이 일부러 음란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보시다시피 오랜 기간 정신 건강이 좋지 못했고 극도로 행동이 위축돼 있으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항변했다. 또 "당시 (혼자) 소변을 보려다 재빨리 수습을 못했을 뿐이다. 피고인은 성범죄 전력도 없고, 범행 동기도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선고기일은 오는 25일이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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