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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돌변한 '공급망'…자포리자의 딜레마 [전쟁과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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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때부터 러에 무기부품 공급
전쟁 이후 그대로 러 폭격으로 돌아와
공급망 방어조치, 한국도 서둘러야

적으로 돌변한 '공급망'…자포리자의 딜레마 [전쟁과 경영] 지난 3월 이후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에네르호다르(우크라이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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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주요 격전지로 떠오른 자포리자는 원래 우크라이나의 주요 방위산업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시크(Motor Sich)’의 본사와 공장이 자포리자에 집결해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의 각종 전투기와 헬기, 탄도미사일의 엔진들도 모두 이곳에서 제작돼 수출된 것들이다.


옛 소련시절부터 우크라이나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드니프로(Dnipro)강을 중심으로 중류에 위치한 도시인 드니프로와 하류의 자포리자는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생산되고 발사되는 주요 군사기지였다.


우크라이나의 로켓 제조업체인 유즈노예(Yuzhnoye)의 주력 우주 로켓 이름이 ‘드니프로’인 이유도 여기서 비롯됐다. 해당 로켓은 지난 2013년 한국의 ‘아리랑 5호’ 위성을 쏘아올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던 로켓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러시아로의 무기 수출이 금지되면서 한때 중국이 모터시크 인수를 시도해 자포리자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항공모함 자체 개발엔 성공했으나 정작 이·착륙이 가능한 강한 출력의 전투기 엔진 생산에 실패해 모터시크 인수에 나선 상황이었다.


2017년 중국이 국영기업을 통해 모터시크 지분을 대량 확보하자,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모터시크 매각을 금지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결국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 정부가 모터시크를 국유화한다고 선언하면서 중국의 전투기 엔진 확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은 러시아가 이 모터시크 공장들을 장악하고자 자포리자에 대한 공세를 반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전투기 부품을 모터시크에 의존했던 러시아 방산업체들이 대러제재로 부품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자 전쟁 지속 자체가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도 자포리자가 가진 전략적 중요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도시들보다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다. 자포리자주 남부지역은 러시아군이 장악했지만, 정작 중심도시인 자포리자의 점령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군은 전략을 바꿔 자포리자 시내에서 50㎞ 남짓 떨어진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했고, 시내와 연결된 전력선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사회에서는 전력선 차단으로 냉각장치가 고장나면 자칫 원자로가 녹아내려 원전이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러시아군은 이에 아랑곳 않고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문제를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결국 자포리자는 그동안 러시아로 판매했던 무기가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된 딜레마에 빠졌다. 하나의 공급망으로 얽혀 있던 우호국이 적대국으로 변모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된 셈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 방어조치들도 자포리자의 상황을 교훈삼아 추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못지않은 힘겨운 안보 상황과 마주한 한국도 열강들의 공급망 방어조치가 앞으로 야기할 문제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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