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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기억에 갇힌 나에게 말하다...용서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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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랑스여자' 미라役 김호정

[라임라이트]기억에 갇힌 나에게 말하다...용서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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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 꿈·현실 오가는 자아의 여행...지울 수 없는 상처 마주하며 구원 바라

주인공과 겹친 현실의 아픈 기억들, 내 이야기 들려주듯 공허함 그려내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는 미라(김호정).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남모를 고민에 잠겨 있다. 친구 영은(김지영)이 커피를 들고 나타나자 태연한 척한다.


"언니,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야. 아무것도." "요즘에도 녹음해서 듣나 봐." "들렸어?" "언니가 처음 불어 배울 때 하던 습관이잖아." "그게 제일 효과적이야." "불어도 잘하면서 무슨. 꾸준히 열심히 하시는구먼."


영화 '프랑스여자'의 구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불규칙하게 오간다. 프랑스 파리 유학 중 만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미라.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친구들을 만난다. 그런데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는 데자뷔를 느낀다.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다. 기억의 꼬리를 잡고 따라다닌다.


"나 어제 이상한 꿈 꿨다." "이상한 꿈?" "응, 꿈에 해란(류아벨)이가 나왔어." "해란이?" "응. 그런데 그냥 나를 쳐다보기만 하는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꿈이 다 그렇지 뭐. 뜻을 알 수가 있나." "그러니까."


[라임라이트]기억에 갇힌 나에게 말하다...용서해달라고


미라는 해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파리로 떠나기 전 그녀의 남자친구 성우(김영민)와 하룻밤을 보내서다. 그는 쓰린 기억을 애써 잊고 지냈다. 그러나 자기가 해란과 같은 처지에 놓이면서 후회스러운 흔적을 복기한다.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반성의 성찰일까. 위안의 자각일까. 배우 김호정에게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라의 여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용서받는 과정이요. 나를 찾는 시간으로도 봤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지나온 세월도, 이루려 했던 꿈도. 미라는 그게 값지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생각해주길 바라죠. 다른 사람에게 미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런 관계가 이뤄지려면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죠.


[라임라이트]기억에 갇힌 나에게 말하다...용서해달라고


-미라처럼 기억에 갇혔던 때가 있나요?

20대 후반에요. 일이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중압감으로 다가왔어요. 저도 모르게 죽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죠. 그래서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프랑스여자'에서 거울을 보는 장면을 찍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유리에 비친 얼굴을 보며 지나온 날들을 돌아봤죠.


-연기에서 배우의 삶이 통과하는 순간이군요.

그럴 때가 간혹 있어요. 배역과 마음이 통하는데 표현하기가 쉽지 않죠. '프랑스여자'에서 미라가 아버지가 묻힌 수목을 찾아가 고백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입을 뗄 수조차 없었어요. 연극에 매진하느라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았어요.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죠. 지울 수 없는 후회로 남았어요. 수목을 바라보는데 그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라고요. 연기에 실어서 표현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미라에게 너무 예민하게 접근해서인지 죄송한 마음만 들더라고요. 김희정 감독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촬영을 잠시 멈췄어요.


[라임라이트]기억에 갇힌 나에게 말하다...용서해달라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식과 맞닿는 이야기라서 표현하기가 더 어려웠을 듯한데….

누구나 미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함부로 말을 내뱉으면서 그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미라는 과거의 잘못을 뒤늦게 인지하며 공포를 느끼는 여인이에요. 용서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미라가 배우를 꿈꿨던 배역이라서 이해하기가 수월했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느낀 감정이 공허함이었어요. 20대를 연기를 향한 열망으로 채우고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려내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김희정 감독에게 제 의견을 많이 전달했어요. 집에 있는 속옷을 입고 연기한 것도 제 아이디어였죠. 락스로 빨아서 변색시키고 다시 색을 입혔어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독특한 이미지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라임라이트]기억에 갇힌 나에게 말하다...용서해달라고


-지난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하시지만, 그만큼 풍부한 경험과 깊은 연륜이 쌓였다고 생각되네요.

미친 사람처럼 열정을 쏟아내던 시절이 그리운 거겠죠.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게 점점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연륜으로 버티고 있죠. 사실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모든 일이 술술 풀린 건 아니에요. 작품이 망하는 경우도 허다했죠. 아픔과 시련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열심히 한다고 그 결과까지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늘 마음만큼은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요.


-영화나 연극에서 만나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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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안 해요. 좋은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을까요? 솔직한 대화를 좋아해요.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더라고요.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고요. 어느 순간 저 또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같이 변해가는 거겠죠.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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