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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코로나19와 사이비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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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코로나19와 사이비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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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진리'를 의미하는 과학이 싸워야 하는 것은 '무지'일까 '편견'일까. 아니면 '앎'을 가장한 '사이비 과학'일까. 이 질문이 향하는 곳은 미국 오리건주. 아이들의 홍역 예방 접종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홍역은 전염성이 강하므로 반드시 접종해야 한다는 찬성 진영 주장에, 반대 진영은 '의학적인 이유'를 들어 고집스럽게 맞선다. 백신을 맞은 후 자폐증을 앓았다(1)거나, 백신 접종 이후 마비 증상을 겪었다(2)거나. 백신에 함유된 알루미늄이 부작용을 일으킨다(3)거나. 정말 그럴까.


의학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자폐증은 선천적이어서 백신과 무관하다(1), (2)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 평상시 우리 몸에 축적되는 알루미늄 양이 훨씬 더 많다(3).


한 번 갖춰진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종교적 이유, 정치적 배경, 개인적 경험…. 그것이 무엇이든 이 순간 과학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 바람에 오리건주 백신 접종률은 미국 평균을 크게 밑돌고 있다. 2000년 소멸했던 홍역은 미국의 골칫거리로 다시 떠올랐다.


'과학 전도사' 칼 세이건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렇다. '사람들은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며칠째 감기 기운이 있어 소주를 마셨더니 증상이 사라졌다거나, 가뭄이 깊어지면 기우제를 지내 비를 기다리는 심리도 마찬가지다. 사실 소주와 감기, 기우제와 비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감기를 며칠 앓다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테고, 기우제도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 지낼 것이므로.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발발한 지 35일째. 가까스로 수습되나 싶더니 '신천지'급의 역병의 둑이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공포와 혼란이 언제 멈출 지 모른 채 우리는 과학과 비과학 사이에 서 있다.


과학은 이것이다. 코로나19는 전파력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보다 강하지만 치사율은 사스(10%), 메르스(30%)보다 낮다. 치사율과 전파력이 반비례한 것은 바이러스 세상에서는 흔한 일이다. 숙주가 건강해야 전파 기회가 늘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이를 진화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피해자를 더 오래 살려주는 방향으로 진화함으로써 전보다 더 많은 피해자들에게 바이러스 자신의 후손을 퍼뜨릴 수 있게 됐던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설사나 기침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병원균의 관점에서 본다면 병원균을 퍼뜨리기 위한 영리한 진화적 전략이다."


비과학은 이것이다. 코로나19는 죄를 범한 자들을 향한 하느님의 징벌이라는 일부 목사들의 막말. 하느님의 심판이 임하면 접촉(비말)이 아니라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는 거짓 선동. 자신들은 신의 은총을 받아서 현대의학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이비 종교의 망상. 그리고 그 틈에 악령처럼 출몰한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들.



물론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과학은 또한 스스로 오류가 있는지 의심하고 확인하느라 더딜 때가 많다. "아직 낙관적인 판단을 할 때가 아니다." 사흘간 확진 환자가 나오지 않았을 당시에도 방역당국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추가 감염 가능성이 제로(0)가 아니라는 합리적인 의심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종식'을 언급한 것은 섣불렀다. 과학의 문제를 비과학인 '정치적 판단'으로 접근한 탓이다. 엄중한 시기일수록 과학적 사고(思考)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지금은 눈앞의 공포에 무력해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과학이다.




이정일 부국장 겸 4차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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