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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서대문구청 단속반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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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서대문구청 단속반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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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마치고 나온 뒤 씁쓸한 현장을 목격했다. 서대문구청 노점 단속반이 보여준 '영혼 없는 공무원'의 민낯이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 또한 내가 사는 동네를 좋아한다. 독립문 공원과 안산 숲을 산책할 수 있고, 가끔 이진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내 쪽으로 길 하나 건너면 영천시장이다. 허름한 밥집, 떡집, 반찬집, 잡화점에 사람 사는 풋풋함이 넘친다. 시장 입구에는 여남은 할머니ㆍ할아버지들이 채소를 한 웅큼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신다. 쪼글쪼글한 얼굴에 새겨진 한분 한분의 세월이 아득하다. "좌판 위의 채소는 아마 직접 따 오신 거겠지, 이걸 다 팔아봤자 꼬깃꼬깃 천원짜리 네댓장이나 될까, 여기 1만년 인류 시장경제의 원형이 남아 있구나,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다음 세대는 영영 이 풍경을 볼 수 없겠구나…." 혼자 엉뚱한 상상을 펼치며 숙연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장에서 콩국수를 먹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ㆍ할머니들이 상추, 감자, 호박을 주섬주섬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길가에 멈춰 선 단속 트럭에서 3~4명의 사내들이 내리는 게 보였다. "웬 단속?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일인 줄 알았는데, 요즘도?" 분위기가 험악했다. "여기서 장사하시면 안 돼요, 어서 가세요!" 이렇게 예의 바르게(?) 할 줄 알았더니, 채소든 과일이든 좌판이든 리어카든 닥치는 대로 빼앗아서 트럭에 실어버리는 게 아닌가. 처음엔 충격을 받았고, 잠시 후엔 분노가 치밀었다. 세월의 풍상에 씻기고 닳아서 온순함만 남은 할머니ㆍ할아버지들은 항의나 저항의 소리를 내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덜 빼앗기려고 허둥댈 뿐이었다. 그리하여 행인 중 한 남자가 단속반과 충돌하는, 결코 코믹하다고 할 수 없는 시츄에이션이 벌어졌다.


단속반이 할아버지의 채소 보따리를 낚아채는 순간 그 남자도 그 보따리를 잡고 버텼다. 실랑이가 벌어졌고, 단속반은 "공무 집행 방해하는 거냐. 나를 밀치겠다는 거냐"며 눈을 부라렸다. 물리적 충돌을 유도해서 엮어 보겠다는 의도가 읽혔고, 주변 행인들이 뜯어말려서 상황이 종료됐다. 인간은 안중에도 없이 사이보그처럼 자기 직무만 추진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에 대한 혐오가 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단속반은 그 남자에게 시간을 쏟으면 다른 사람들을 다 놓치겠다고 판단했는지 결국 자루에서 손을 뗐다. 할아버지는 보따리를 들고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넜고, 행인에 불과한 나는 그제서야 단속반에게 나도 한 마디 할 걸, 후회가 들었다. "남한테 폐 끼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단속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리 신고가 들어왔다 해도 노인네들을 이렇게 함부로 대하시면 어떡해요. 오늘 행태에 대해 구청장에게 항의하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어땠을까, 혼자 하릴없이 시뮬레이션을 거듭했다.

이날 거칠게 노인들을 윽박지른 단속반은 말단 공무원이거나 이들의 지시를 받는 용역일 것이다. 이들이 서대문구 명의로 일한다면 서대문구청장의 지휘를 받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대문구청장 당선자가 이날 사태를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불법 상행위 단속은 불가피하며 아무리 노인이라도 예외가 없다"고 할까, 아니면, "나는 따뜻한 계도를 지시했지만 말단 요원들에게 뜻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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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지원 확대, 청년 일자리 공정한 출발, 자영업자 소상공인 기(氣)살리기, 어르신들의 편안한 노후…. 어차피 표를 얻으려고 내놓은 약속이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났고, 거리를 뒤덮은 화려한 구호들은 사라졌고, 모두 현실로 돌아왔다. 투표장을 나온 뒤 목격한 살벌한 단속의 현장,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현실이었을까. 선거 암만 해 봐야 풀뿌리 삶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대하는 방식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이 나라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부터 선거차량이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며 달콤한 공약들을 쏟아내던 날, 필시 이 동네 손바닥만한 땅에서 끊어왔을 상추, 호박, 콩을 단속반에게 빼앗긴 할머니ㆍ할아버지들의 무기력한 눈빛만 오래도록 남아 있다.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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