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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세계 오페라 질서의 중심, 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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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세계 오페라 질서의 중심, 메트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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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소프라노 캐슬린 김, 테너 마르셀로 알바레스의 콘서트가 최근 서울에서 열렸고 성악 애호가와 미디어가 주목했다. 가수들의 매력과 장기는 제 각각이지만 이들의 공통 분모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의 주역을 맡은 점이다.


밀라노 라 스칼라, 빈 슈타츠오퍼,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런던 로열 오페라처럼 세계 각지에 지역을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이 있지만, 메트는 명실상부 세계를 대표하는 오페라 하우스다. 노래, 외모, 연기에서 누가 지금 최고의 스타인지 경염하고 확인하는 장이다. 세계 명문 축구 구단들이 있지만 압도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레알 마드리드가 있듯, 세계 메이저 오페라 극장 위에 메트가 존재한다.


메트는 현재 뉴욕 맨해튼의 링컨 센터 안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약 3800석, 입석 포함 4000석)에 근거를 둔다. 1966년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기 전까지 1883년부터 브로드웨이에 메인 극장을 뒀다. 조직은 비영리 법인 형태로 유지되고 주로 티켓과 공연 파생 상품의 판매수익, 기부금으로 수입이 유지된다. 유럽 대부분의 오페라 극장이 국고 지원을 받아 존속하지만 메트는 민간이 지탱한다. 유럽 오페라 하우스는 귀족이 모이는 사교장에서 발전했고, 메트는 청교도적 가치인 기부로 성장했다. 미국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은 명예를 얻고 공인받기 위해 메트에 돈을 넣었다. 기부자 파티에 참석한 부호의 한마디가 연출에 영향을 미치는 게 지금도 자연스럽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대공황,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격변에 따라 부침이 반복됐지만 메트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상근 직원만 800여명, 비상근 제작 스태프는 1000여명이 시즌에 하우스를 오간다. 연간 300여명의 주조역 가수가 필요하고, 100여명의 메트 오케스트라, 80여명의 전속 합창단이 업종 노조 단위로 움직인다. 대통령이 직접 오페라 극장의 노동 문제를 언급할 만큼, 메트는 미국 사회에서 단순한 쇼 비즈니스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메트가 곧 세계 오페라의 주류 트렌드이고 국제 정세의 변화를 먼저 체감한 곳도 메트다. 고정 관객이 푸치니와 바그너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파가 나뉘고, 돈이 되는 오페라는 역시 베르디라는 결론에 이른 적도 있다. 과도기에는 검증되지 않은 미국 작곡가의 작품도 올랐고, 바로크 오페라에도 눈을 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으로 러시아에서 나온 일급 성악가들을 품기 위해 1990년대에는 슬라브 오페라가 대거 뉴욕에 유입됐고, 20세기 초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메트를 석권하기도 했다.


[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세계 오페라 질서의 중심, 메트 메트 오페라하우스 (C) Richard Termine

성악가들에게 메트는 명성에 날개를 다는 곳이다. 엔리코 카루소부터 프랑코 코렐리, ‘스리’ 테너를 거쳐 요나스 카우프만까지,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의 경쟁부터 체칠리아 바르톨리를 거쳐 안나 네트렙코까지, 유럽에서 호평 받은 스타들도 메트 관객의 입증을 거쳐야 수퍼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파바로티가 지난 세기 ‘성악의 제왕’으로 등극한 곳도 메트다. 그는 1972년 메트에서 올린 '연대의 딸'에서 아홉 차례의 하이C(3옥타브 도)를 정확히 성공시킨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하이C의 제왕'으로 불렸다.


무명에 머물던 카우프만은 2006년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파트너로 ‘라 트라비아타’ 알프레도로 오른 다음, 45년 전 ‘일 트로바토레’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프랑코 코렐리에 비견되며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카우프만처럼 유럽 메이저 극장에서 활약하던 성악가들이 메트 데뷔를 기다리는 건 무엇보다 경영진과 비평가, 관객이 지난 130여년 동안 거대한 드라마를 완성해온 메트만의 분위기에서 극장 예술의 극치를 맛보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성공을 거두면 부와 명예가 뒤따른다.


소프라노 홍혜경은 메트 전속으로 극장의 안방마님처럼 커리어 내내 명작의 주조역을 섭렵했고, 조수미와 신영옥도 1990년대 자신의 이름을 캐스팅보드에 올렸다. 2010년대에는 베이스 연광철, 테너 이용훈이 메트에서 호평 받는 성악가로 입지를 굳혔고, 2019/20시즌에는 빈 슈타츠오퍼의 베이스 박종민이 메트 입성을 기다린다.


현재 메트를 끌고 가는 양대 기둥은 행정감독 피터 겔브와 예술감독 야닉 네제 세갱이다. 소니 클래식스 레이블의 CEO 출신인 겔브는 2006년 메트의 행정감독으로 오면서 오페라극장의 라이브 및 지연 중계 서비스 ‘더 메트 라이브 인 HD'(The Met: Live in HD)를 성공시켰다. 65세 이상 노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관객 구조로는 메트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고 수익 개선 사업으로 공연 영상화 작업과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를 추진했다. 예술가 노조는 돈을 나눈다는 겔브의 약속에 흔쾌히 서비스에 동의했고 불과 2년 만에 오페라극장보다 더 많은 관람객이 시네마에 들어찼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주류 언론이 2000년대 후반 겔브의 이노베이션을 격찬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메트 라이브 인 HD를 영화관에서 보느라 메트 오페라하우스를 찾지 않는 관객이 늘어나면서 전체 박스오피스 매출이 감소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영상 서비스의 활황이 예술조직에 역마진을 초래하는 상황을 두고 메트는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에 기업 후원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고심 중이다.


몬트리올 출신의 1975년생 지휘자 세갱은 2012년부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아 파산 위기에 처한 악단을 음악적으로 복원하는데 탁월한 성과를 내놓았고 2016년 제임스 레바인 후임으로 2020~2021 시즌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음악감독에 지명됐다. 그러나 2017년 12월 레바인의 성추문이 불거지고 메트에서 해고된 이후, 세갱은 시기를 앞당겨 2018~2019 시즌부터 메트 음악감독직을 수행 중이다.


늘 웃는 얼굴에 피트니스로 다진 엄청난 에너지를 음악에 퍼붓는 열정에 뉴욕의 노인 관객들이 매료됐다. 그러나 미래를 낙관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사람을 설득해서 충성심을 자아내게 하는 특유의 용인술이 로테르담과 필라델피아처럼 메트에서도 악단에 녹아드는지, 아직까지 뉴욕 언론의 판단은 유보적이다. 가수들이 언론에 비치는 지휘자를 향한 찬사는 립서비스인 경우가 많다. 신인 시절부터 자신을 뒷받침한 후원자 재클린 뒤마리에가 2018년 사망한 것도 세갱에는 큰 충격이다.


전체적으로 2019년 메트는 위기다. 세계 최고의 테너에 오른 카우프만은 겔브의 운영 방식을 비난하며 “향후 메트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레바인의 반복된 성희롱을 경영진이 묵과하지 않았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클래식계 만연한 캐스팅과 관련한 권력남용과 성폭력에 대해, 메트의 후속 조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오페라는 시각 예술이라면서 주역 소프라노라면 날씬해야한다는 시각을 공공연히 밝히는 메트 후원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먹히는 조직이다. 쿠바계 소프라노 리셋 오로페사는 캐스팅을 위해 위 절제술을 하는 선배 데보라 보이트를 목격한 이후, 마라톤으로 체중을 유지한다. 신인 시절 살이 찐 마리아 칼라스가 메트에 퇴짜를 맞은 역사는 지금도 반복된다. 예술가의 보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단계로 메트는 더 나아가야 한다.


그래도 메트의 희망은 가수들에게서 본다. 뉴욕에서 조간을 펼치면 지난 밤 메트를 빛낸 새로운 스타의 등장에 흥분하는 기사가 이어진다. 지난 2월 메트는 다시 ‘연대의 딸’을 올렸고, 토니오 역의 멕시코 테너 하비에르 카메레나는 파바로티,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로 이어지는 메트 ‘연대의 딸’ 스타 계보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아직까지 카메레나의 이름이나 목소리에 익숙하지 않아도, 메트에서 스타덤에 오른 것만으로 그의 미래는 밝다. 그래서 여전히 메트는 오페라계의 엘도라도다.



한정호 객원기자ㆍ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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