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윤재웅의 행인일기 63] 베네치아 광장에서

수정 2020.02.11 16:34입력 2019.10.11 09:32
[윤재웅의 행인일기 63] 베네치아 광장에서 윤재웅

아침 하늘이 깨끗합니다. 파란 하늘, 높은 하늘, 눈부신 하늘. 가슴을 펴고 하늘을 마십니다. 박두진(1916~1998)의 시 구절을 마십니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제가 하늘 마시듯 하늘도 저를 마십니다. 하늘에 온몸이 안기는 느낌은 사람과 하늘이 함께 호흡하는 경지가 아닐까요.


하늘의 호흡은 밝은 불이요 신성한 술입니다. 저는 지금 로마의 아침 하늘 아래서 맑은 공간의 밝은 불을 깨끗하고 신성한 술처럼 마십니다.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자 음악의 신이지요. 저는 포도주 대신 햇살만으로 취하는 기분입니다. 햇살 디오니소스. 지금 이 순간의 양명한 도취. 밝고 화창한 하늘입니다.

경쾌한 발걸음. 파도 치듯 밀려왔다 밀려가는 어깨. 트래킹의 진정한 고수는 다리로 걷는 게 아니라 어깨로 걷는다고 합니다. 하늘 아래 어깨로 걷기. 하늘 호흡에 박자 맞추기. 오늘 아침 저는 하늘 파도의 리듬에 어깨를 맡깁니다. 먼 바다로 배 밀려가듯 베네치아 광장을 향해 흔들흔들, 너울너울, 나아갑니다. 크고 시원하고 깨끗한, 바다처럼 생긴 하늘 밑입니다.


멀리서부터 압도됩니다. 로마 시내 중심부의 거대한 대리석 건물. 사통팔달의 로마 가운데서도 배꼽 같은 곳. 백색의 항공모함이 떠 있는 듯합니다. 건물 전체가 흰 색인 데다가 중앙부를 가득 채운 열주(列柱) 때문에 '백색 타자기'로 불리기도 하는 기념물. 이탈리아 통일(1870)을 기념하여 조성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입니다.

1885년부터 25년간 공사를 했지요. 완공 한 세기밖에 안 된, 이 정도면 로마에서 신축 건물입니다. 승전과 통일의 상징인 이 기념물의 콘셉트는 '압도'이자 '과시'.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폐허 바로 옆에 솟아 있다는 게 이질적입니다. 로마 역사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웨딩케이크'라는 초기의 비난을 실감합니다. 광장을 가로질러 기념관을 향해 오르면 사람이 한없이 왜소해집니다. 크기로 압도하려는 동물들의 투쟁 심리가 건축물에 반영되어 있지요. 숭고함으로 감화시키는 게 아니라 덩치로 굴복시키려 합니다. 대상이 압도적으로 크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지요. 크기는 힘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사후에도 영원한 왕이고자 했던 파라오의 절대권력을 보여주지요. 몽골 울란바토르 외곽의 칭기즈칸 기마상은 대형 조각품인 동시에 건축물입니다. 계단을 한참 걸어올라, 전망대에 아찔하게 서서, 멀리 몽골 초원을 바라볼 수 있지요. 위대한 정복왕은 한 채의 커다란 집으로 재탄생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 건축물은 그 자체로 권력입니다. 자연과 환경 앞에 스스로를 뽐내려는 욕망이지요. 서울의 경복궁을 본 사람이 베이징의 자금성을 보면 압도당하게 마련인데 그 이면에 건축의 과시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자금성의 압도감이 불편하기만 할 뿐입니다.


경복궁은 자연보다 크지 않게 자리하려는 겸손과 조화의 건축철학이 매력입니다. 자연과 환경 앞에 자신을 낮추는 건축. 이런 겸손과 조화가 인류의 건축 이상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재웅의 행인일기 63] 베네치아 광장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승전의 자부심과 민족통일의 기쁨을 나타내려는 심리학의 산물입니다. 사람들의 실생활과 별 관련이 없지요. 너무 크고 넓어서 범접할 수 없습니다.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면 사람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나오지요. 비현실적인 집입니다.


기념관 앞에 서 있는 거대한 기마상. 높이 10m에 이르는 이 조각상의 주인공이 바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입니다. 조각상 완성 후에 말의 배 속에서 조각가와 주물공들이 함께 식사를 했을 정도라니 직접 보지 않고도 크기를 헤아릴 수 있을 테지요.


자부심과 기쁨이 크다 한들 하늘보다 크겠습니까. 파란 하늘 아래 지상의 거대한 백색 대리석 건물도 자그마한 성냥갑일 뿐입니다. 삼천리 백두대간조차 하늘 아래 뫼(山)이지 않습니까.


베네치아 광장에서 저는 오히려 밝고 푸른 대광명의 하늘을 느끼는 중입니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은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면서 조선 휴머니즘의 새로운 탄생을 선언했는데 저는 이 가르침을 사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체험으로 느끼는 중입니다.


사람이 하늘입니다. 사람이 창공이고 사람이 햇살입니다. 지상의 집이 크면 자랑스럽고 작으면 부끄러울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하늘을 호흡하고 자기 안에 함께 두면 자부와 기쁨이 제 안에서 자랍니다. 길 가는 이여, 저는 지금 '큰 집'을 버리고 하늘 아래 '걷기 명상' 중입니다. 사람이 창공이 되고 햇살이 되는 제 나름의 차례를 소개합니다. 들숨 날숨을 고릅니다. 걸음걸음마다 하늘바다로 배 밀고 갑니다. 온몸에 퍼지는 밝은 술. 그대, 순풍이 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생명입니다.


문학평론가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 SNS공유 스크랩

오늘의 토픽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