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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한국 경찰, 미국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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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아뿔사, 걸렸구나. 미국에서 첫 '딱지'를 끊었다. 주차가 허용되는 집 주변 이면도로에 차를 세워 놓고 안심했는데 , '역방향 주차'까지 단속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고 보니 누군가 신고를 했다. 5년 전 기억도 떠올랐다. LA 한 관광지 주변 주택가에서 내비게이션을 들여다 보느라 스톱(stop) 사인을 깜박 놓쳤다. 주변에 사람이나 차량이 없어 안심했는데, 어느 순간 차 한 대가 옆에 붙더니 창문을 열고 말을 걸었다. 다행히 경찰차는 아니었고, 한 나이든 백인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를 불러 세우더니 한참을 혼냈다. "경찰서가 여기서 200m도 안 되는 데 정신이 나갔냐"는 등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정말 죄송하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현장을 떴다.


이따금 마주치는 뉴욕경찰(NYPD)들도 한국에서와 달리 이곳에선 '경외'의 대상이다. 대부분 덩치가 엄청나게 큰 NYPD들은 늘 공손함(courtesy), 전문성(professionalism), 존중(respect)라는 구호를 차에 붙여 놓고 다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엄격함(strict)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경찰에 손을 대거나 반항하면 최악의 경우 총에 맞을 수도 있으니 절대 순응하라는 현지 관계자들의 조언을 수도 없이 들었다. 어쨌든 요 며칠 미국인들은 민ㆍ관 불문하고 엄격한 공권력과 시민들의 자발적 감시ㆍ준법 의식이 강하다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


한국은 어떨까. 물론 한국도 타국에 비해 법 질서가 자리잡고 안정화된 곳이다. 한국만큼 치안이 좋은 나라도 드물다. 다만 공권력에 대한 대접 자체만을 놓고 보면 미국과 다르다. 주취자들의 폭력, 민원인들의 공무원 폭행 등이 소위 공권력에 도전하는 민간인들의 행위가 빈번하다. 심지어 옛말에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교사들마저 학생ㆍ학부모들로부터 폭력에 시달린다. 거대한 시위와 사회적 흐름이 형성돼 공권력 자체가 무력화되기도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도 마찬가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권력에 대한 신뢰의 근간이다. 사회의 혜택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소위 '지도층'들의 솔선 수범, 공평한 의무 분담과 법ㆍ제도의 공정한 적용, 도덕적 생활 등은 법ㆍ제도와 공권력의 정당성과 순응도를 뒷받침해 준다. 미국을 보면, 최근 '부자 증세' 필요성을 촉구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조지 소로스, 테드 터너, 빌 게이츠 등 '재정건전성을 바라는 애국적 백만장자모임' 회원들 같은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 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요즘 '갑질' 기업인들과 도무지 발을 어디에 붙이고 사는 지 이해할 수가 없는 정치인들의 행보만 눈에 들어 온다. 때론 인성 부재의 인물들의 행태가 너무 부각된다. 드라마를 봐도 은밀한 강남의 클럽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주범들은 주로 '이사님', '본부장님', '실장님' 들이다. 사회적 의무 이행과 봉사는 커녕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직원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서 신처럼 군림하려 드는 이들이 속속 언론에 노출돼 집중적인 비난을 받는다.


단편적인 이해일 수 있지만 미국의 경우 건국 이후 200년 넘게 법과 공권력을 민주주의 선진국 답게 나름 시민 사회가 합의를 통해 만들고 통제해 온 나라다. 스스로 만든 룰을 집행하는 '공권력'에 대한 신뢰ㆍ순응도는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엄격한 법 집행이 필수적인 이민 사회의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왕조 시대를 거쳐 식민지 시대, 군사 독재 등 '불의한 권력'이 군림하고, 공권력은 그것을 뒷받침 해 온 근현대사가 아직도 한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공권력에 대한 감정이 악화할대로 악화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공권력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제대로 서려면, 시민들의 참여와 동의, 실천이 필수일 것이다. 그러려면 막연하더라도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칙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면서 사회 분위기ㆍ문화ㆍ교육 등을 개선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을 것 같다. 아침에 발견한 주차 딱지 한 장이 준 오늘의 상념이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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