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사태' 후 몸 사리는 경제단체
관세 폭탄에 즉각 성명 내는 美상의와 대조
기업 고충 전달하고 대안 제시해야
"입장을 밝히기 어렵습니다." "익명을 요청합니다."
최근 대미투자특별법, 상법 개정안 등 굵직한 산업계 현안을 취재하며 경제단체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답변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조심스럽다"거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신중론 일색이었다. 법안 하나하나가 기업 경영 환경과 직결된 사안임에도 재계 목소리를 모아야 할 경제단체의 공식 논평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속세 통계를 둘러싼 이른바 '가짜뉴스 사태'로 홍역을 치르면서 경제단체 전반에 몸을 사리는 기류가 역력하다. 섣불리 입장을 냈다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사느니 조용히 있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내 산업계가 직면한 현안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미국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은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 리스크와 직결된 문제다. 처리가 지연될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들의 의사결정은 흔들린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3차 상법 개정안 역시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단체가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 정책 논의의 장으로 가져와야 한다.
경제단체는 단순한 민간 조직이 아니다. 수백 개 많게는 수만 개의 회원사를 대신해 산업계의 목소리를 모으고 정책 당국과 소통하는 중요한 창구다. 대기업은 정치적 부담 탓에, 중소·중견기업은 정보력과 채널 자체가 부족해서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직접 목소리 내기 어려운 구조에서, 경제단체는 일종의 '보험' 성격이 짙다. 개별 기업이 회비를 내고 회원사로 참여하는 이유도 이런 기능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소극적 행보는 해외 경제단체와 비교하면 더욱 아쉽다. 미국 최대 경제단체인 미국 상공회의소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즉각 반대 성명을 냈다. 관세 부과가 가져올 물가 상승과 공급망 교란을 정면 비판하는 동시에 의회·행정부와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임에도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내며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경제단체의 본업임을 증명한 것이다.
지금 뜨는 뉴스
경제단체의 침묵이 길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자칫 산업계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정책이 결정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따른 개별 기업들의 손실은 나중에 어떤 대책으로도 보상받기 어렵다. 재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라면 '안전한 이슈'에만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철저한 분석과 객관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은 기업의 고충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경제단체의 목소리에서 시작될 것이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