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동력 상실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돌파구는 글로벌 다국어 더빙과 단계적 침투
현지화 통한 전방위적 '문화 이식' 전략 시급
28일, 용산 아이파크몰 광장에서 시민들이 일렬로 늘어선 대형 도라에몽 모형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글로벌 지식재산권(IP) 창출을 멈춘 지 오래다. 좁은 내수와 영유아 편중, 자막 중심의 소극적 수출 등으로 긴 정체기를 앓는다.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일본 콘텐츠 산업의 해외 진출 현황과 국제화 전략'은 국내 기업들에 생존 교본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 매출은 2024년 2조1702억엔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크런치롤 등 글로벌 플랫폼을 지렛대 삼아 영토를 넓혔다. 해외 계약 건수는 2152건으로 전년 대비 폭증했고, 진출 국가 역시 154개국으로 늘었다. 20대 이하 젊은 층을 핵심 소비층으로 끌어들여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해외 매출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제작사의 간판보다 콘텐츠 본연의 재미와 매력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든 작품도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기민한 판매 장치와 전략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포스터
일본은 철저한 '문화적 각색'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인도 시장에서 도라에몽과 크레용 신짱을 20년 가까이 방영하며 안방극장을 선점한 TV 아사히가 대표적 예다. 현지 다수 공용어에 맞춘 세심한 더빙은 물론, 인도 문화 맥락에 부합하도록 서사를 재구성했다. 어린이의 생활 리듬에 맞춰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해 시청 습관도 굳혔다.
지난해에는 현지 파트너와 1980년대 히트작 '오보차마군(왕괴짜 돈만이)'을 공동 제작해 방송하기도 했다. 일본어 특유의 말장난을 인도 문화에 맞게 재창조하고, 수작업 중심의 일본 제작 방식을 인도의 디지털 제작 환경에 맞추며 연출 기법까지 조율했다.
애니메이션을 미끼로 던져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는 단계적 현지화 전술도 돋보인다. 세계 IP 수익 1위 포켓몬은 인도를 차세대 목표로 지목하고, 현지 마케팅실을 신설해 2028년 3월까지 25억엔을 투입한다. 콘솔 기기 보급률이 낮은 현지 사정을 고려해 정면 돌파 대신 우회로를 택했다. 다국어 애니메이션 무료 배포로 인지도를 먼저 확보하고, 저가 라이선스 상품과 모국어판 카드 게임으로 커뮤니티를 다진 뒤 최종적으로 콘솔 게임을 판매하는 4단계 공략법을 실행한다.
출판 업계 역시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입체적인 공략법을 구사한다. 포플라사의 '쾌걸 조로리'는 이미 도서 출판과 애니메이션 방영을 결합해 대만 시장을 장악했다. 아동서는 대만 국립도서관 대출 순위에서 3년 연속 6~11세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단행본 판매량은 현지 평균의 약 열 배인 1만부를 기록했다. 원작자를 해외 행사에 직접 초청해 현지 팬들의 열기를 확인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아저씨 개그 등 언어유희를 현지 정서에 맞게 과감히 뜯어고쳤다.
최근에는 다국어 더빙과 글로벌 배급망으로 현지화 판을 키웠다. 성공 사례로는 단연 '사카모토 데이즈'가 손꼽힌다. 국가별 순차 공개 관행을 깨고 넷플릭스와 협력해 190개국 이상 동시 송출을 결행했다. 일괄 시청에 익숙한 해외 시청자에게 매주 업데이트 형식을 각인시키고자 각국 넷플릭스 홍보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모션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인도네시아어, 아랍어 등 열두 언어 더빙을 지원해 시청 진입 장벽도 대폭 낮췄다. 특히 인도네시아어 더빙 채택은 해당 국가의 애니메이션 팬이 증가한다는 데이터에 근거한 전략적 결단이다. 1차원적 자막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시급히 도입해야 할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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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감수한 이혜은 콘진원 도쿄비즈니스센터 센터장은 "단순한 작품 공급을 넘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식재산권(IP)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크로스오버를 강력히 추진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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