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입찰로 피해자 지원? 말 안 돼"
피해자 열한 명·신규 신고 열여섯 건 방치
영화계 단체·성폭력상담소와 '공동 협약'
영화계가 정부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 개편 방식에 대해 "피해자 보호는 비즈니스가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피해자 지원 업무를 경쟁 입찰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사업의 공공성과 전문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여성영화인모임과 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영화단체들은 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의 '시장화' 중단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영진위가 지난해 5월 20일 든든에 대한 공적 지원을 중단하고 9개월째 피해자 보호의 '행정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태의 발단은 영진위가 기존 지정 위탁 방식 대신 조달청 경쟁 입찰을 도입하려 한 데 있다. 단체들은 "고도의 전문성과 신뢰가 필수적인 성폭력 피해자 지원 업무를 '최저가 입찰'이나 '1년 단위 단기 계약'으로 운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신뢰가 깨진 시스템은 더 이상 안전망이 될 수 없다"며 제도의 안정성 확보를 요구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도 "지원사업이 영리 법인에 넘어갈 경우, 피해자 보호가 아닌 법리 다툼 중심의 '시장 논리'로 변질해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행정 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여성영화인모임에 따르면 지원 중단 뒤에도 기존 피해자 열한 명이 남아 있고, 지난해 말까지 신규 상담·신고 열여섯 건이 접수됐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의료·심리 상담과 법률 지원이 제한돼, 일부 피해자는 진료비를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영진위가 국정감사 지적 뒤 약 2.5개월분의 비용을 한시적으로 지원했으나, 연속적인 보호 대책은 여전히 부재하다.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영화계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여성영화인모임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업무협약을 맺고 4월 말까지 피해자 법률·의료 지원을 공동 수행하기로 했다. 또한 영화노사정협의회 등 관련 단체들과 든든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공동 협약을 체결하며 자체적인 안전망 구축을 선언했다.
지금 뜨는 뉴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손솔 의원은 "현재의 공백은 주무 부처인 문체부가 손을 놓은 결과"라며 "국회 차원에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참여 단체들은 ▲피해자 지원사업의 시장화 즉각 중단 ▲공공성·비영리성 원칙 천명 ▲문체부의 영화계 공식 간담회 수용 등 4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