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도입과 활용이 보편화되면서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서는 신입 변호사와 회계사 선발 규모를 줄이고 있다. 코딩이 주 업무인 프로그램 개발회사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올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AI 분야를 선도하는 구글 딥마인드와 앤트로픽의 최고경영자(CEO)는 대놓고 경고했다.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는 AI가 올해부터 신입·주니어급 일자리와 인턴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고, 앤트르픽의 다리오 아모데이는 향후 5년 내 신입급 일자리의 50%가 사라질 수 있다는 기존 전망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브루킹스연구소의 몰리 킨더(Molly Kinder) 선임연구원은 'AI로부터 신입 일자리를 지키려면, 의료 레지던트 모델을 참고하라(To save entry-level jobs from AI, look to the medical residency model)'는 제목의 글에서 “이들의 전망이 맞다면, 지식 노동 분야에서 젊은 인재를 키워온 전통적 방식(초급 인력을 채용해 단순·반복 업무를 맡기고 그 과정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모델)은 해당 업무를 AI가 대신 수행하는 순간 지속되기 어렵다”며 몇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킨더 연구원은 커리어 사다리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의료 분야의 레지던트(전공의) 제도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레지던트 제도는 학습 자체가 곧 업무인, 구조화되고 멘토링이 결합된 프로그램이라며 AI로 인해 흔들리는 화이트칼라 직종도 자신들만의 레지던트 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AI는 컴퓨터상에서 수행되는 지식 업무, 즉 조사, 글쓰기, 계산, 코딩 등에는 뛰어나지만, 배심원의 반응을 읽고 설득력 있는 최종 변론을 하는 재판 변호사(미국의 경우), 또는 민감한 해고 문제를 조율하는 관리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런 역할에는 판단력, 직관, 현장감이 필요하며 이는 디지털화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 길러지는 역량이다.
문제는 과거 이런 역량을 키워주던 신입 단계의 일자리(문서 초안 작성, 보고서·프레젠테이션 제작, 분석 작업 등)가 AI로 인해 대체될 수 있는 업무라는 점이다. 기업들이 이런 역할을 더이상 제공하지 않게 되면, 고급 전문성과 미래의 관리자·리더로 성장하는 경로 자체가 끊기게 된다. 신입 일자리는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기능뿐 아니라, 상위 역할을 준비시키는 기능도 수행해 왔다.
의료 레지던트 제도는 정반대의 접근을 취한다. 레지던트는 수련 중인 의사이지만, 동시에 실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다. 처음부터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 계획을 제안하며, 감독 아래에서 실제 의료 결정을 내린다. 선배 의사들은 사례를 함께 검토하며 판단 과정을 설명하고, 점진적으로 자율성을 부여한다. 중요한 점은 학습이 부수적 혜택이 아니라, 업무 그 자체라는 것이다.
킨더 연구원은 화이트칼라 직종도 이를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법조계에서는 신입 변호사가 수년간 문서 검토와 계약서 작성에 매달리는 대신, 협상에 동행하고 법정 변론을 연습하며 점차 사건을 주도하도록 할 수 있다. 멘토는 선택과 판단을 사후에 함께 되짚는다. 목표는 청구 가능한 시간(billable hours)이 아니라 역량 개발이다. 컨설팅 업계에서도 레지던트는 첫날부터 고객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해, 선배들이 분위기를 읽고 이의를 처리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코칭을 받으며 점차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러한 훈련은 비용이 든다. 의료 분야에서는 사회 전체가 유능한 의사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미국 납세자들이 메디케어를 통해 병원의 수련 비용을 보조한다. 화이트칼라 훈련을 세금으로 지원할 필요는 없지만, AI로 생산성 이익을 크게 얻는 기업들은 그 이익이 의존하는 인재 파이프라인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책임이 있다.
킨더 연구원이 제시한 또 한 가지 방안은 AI 노동력 재투자 기금이다. 신입 일자리를 자동화로 대체하는 기업들이 기금에 기여해, 산업 전반의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혁신에 대한 페널티가 아니라, 효율성으로 얻은 이익 일부를 다음 세대 인재에 재투자하는 장치다. 영국은 이미 대기업에 소규모 임금 부담금을 부과하되, 승인된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환급받을 수 있는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use it or lose it)’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일자리가 영구히 사라진다는 전제의 기본소득이나 재교육 프로그램과 달리, 청년들이 진입을 준비해온 전문직으로 가는 통로를 유지한다.
킨더 연구원은 자선 부문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 변화에 관심 있는 재단들은 표준화된 교육과정이나,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중개 인프라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청년 공공서비스 프로그램을 레지던트 모델로 전환해, 법률구조 단체·공공기관·비영리 기술팀 등에 젊은 인재를 배치함으로써, 공익에 기여하면서 실질적인 전문 역량과 멘토링을 제공할 수 있다.
기업·자선·정부 어느 쪽도 나서지 않는다면, 그 비용은 청년 개인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게 킨더 연구원의 생각이다. 졸업생들은 추가 학위 취득, 고가의 부트캠프, 혹은 인맥에 의존한 인턴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 AI의 생산성 이익은 주주와 고위 인력에게 돌아가고, 청년들은 자기 커리어 개발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게 된다.
킨더 연구원은 “미래의 리더를 원한다면, 그들을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멘토링 중심의 과정에 투자해야 한다”며 “정책 입안자, 기업, 자선단체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학습과 역량을 중심에 둔 새로운 커리어 사다리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 구축에 지금부터 나서야 한다”고 글을 끝맺었다.
킨더 연구원의 주장이 현실에 맞는 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AI로 인한 신입·주니어 일자리 축소라는 충격파가 크게 다가올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이런 아이디어까지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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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더 연구원은 AI, 경제적 불평등, 현재와 미래의 노동 분야에서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생성형 AI가 일과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분석하는 다년간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국제개발 전공으로 공공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재형 경제정책 스페셜리스트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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