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교환 담합' 적용 첫 사례
거래조건 담합해 부당이득
중소기업·소상공인 자금조달 피해
4대 시중은행이 부동산 담보 대출의 중요한 거래조건인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를 담합한 행위로 21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약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은행 간 경쟁요소인 LTV 정보를 하향 담합해 경쟁을 회피하고 은행들의 리스크를 대출자들에게 전가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KB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은 2022년 3월부터 최근까지 LTV 등 대출에 필요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기로 합의해 실행하고 자신들의 LTV 결정에 활용했다.
각 은행 여신 담당자가 다른 은행을 직접 방문해 출력물인 하드카피 형태로 LTV 정보를 주고받았다. 은행당 최대 7500건에 이르는 이 정보를 수기로 일일이 엑셀파일에 입력하고 받아온 하드카피 문서는 파기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또 담당자가 교체되더라도 정보교환이 중단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은행별 정보교환 담당자, 교환 방법 등을 정리해 전·후임자 사이에 인수인계까지 하며 장기간에 걸쳐 정보교환 담합행위를 실행했다.
LTV 정보는 경쟁상 민감한 정보에 해당한다. 대출량과 금리 등 대출 조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출자들은 LTV가 올라갈수록 빌릴 수 있는 돈도 늘어나기 때문에 높은 LTV를 선호하고, LTV는 은행 간 경쟁요소가 된다. '타행 대비 선제적인 LTV 인하 시 담보대출의 경쟁력이 상실된다'고 진단하고 있는 은행들의 내부 보고서에도 이 같은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반면 은행들은 낮은 LTV를 선호한다. LTV가 낮으면 부동산 침체 등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해도 은행들의 손실 위험이나 대출 상환위험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출자들의 비용으로 은행들의 리스크를 덜게 하는 셈이다. 공정위는 "LTV가 다른 은행보다 높으면 경쟁 은행에 비해 대출금 회수 리스크를 많이 부담하게 돼 낮추고, 반대로 다른 은행보다 낮으면 고객 이탈로 영업경쟁력이 약화할 것을 우려해 높였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으로 대기업에 비해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이 신용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과 추가 담보 제공의 어려움 등으로 자금조달의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봤다.
이들 은행이 입력한 엑셀파일에는 부동산의 종류별, 토지별 LTV 정보가 열거돼 있다. 이 테이블에는 국내에 어떤 부동산을 담보로 가져오더라도 경쟁 은행이 몇 퍼센트의 LTV로 대응할 것이라는 조건부 전략이 담겼다. 예를 들어 경쟁은행이 2023년 1월30일부터 서울 광진구에 있는 일반 상가에 60%, 관악구에 있는 공장에 40%의 LTV를 적용할 계획이라는 내용을 알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 테이블만 확인하면 국내 모든 부동산에 대한 경쟁 은행의 세부적인 LTV 적용전략을 알 수 있는 매우 유용한 경쟁사 정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자신의 LTV가 타행 평균보다 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 조정했으며, 타행 평균과 비교해 5%포인트 이상 낮은 지역을 LTV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중요한 거래조건인 LTV 정보교환을 통해 경쟁을 회피했고, 금융소비자들은 거래은행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피해를 봤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다만 이번 담합으로 인한 정확한 피해 규모를 금액으로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이 '공정거래법 제 40조 제1항 9호'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4대은행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2720억1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은행별로 국민은행 697억원, 우리은행 515억원, 신한은행 638억원, 하나은행 869억원 등이다. 과징금 부과의 근거가 되는 관련 매출액은 4대 시중은행 통틀어 약 6조8000억원으로 추산됐다.
2021년 말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정위는 경쟁사업자 간 가격 등 정보교환을 합의해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을 정보교환 담합으로 보고 제재한다. 이번 사건은 정보교환 담합이 적용되는 첫 사건이다.
공정위는 "이들 은행 소속 직원들은 이전부터 LTV 정보교환이 있었음을 인정했지만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른 정보교환 담합 행위 금지 조항이 시행된 이후인 2022년 3월께 정보를 교환한 행위부터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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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간 금융시장에 장기간 유지됐던 경쟁제한적 행태를 제재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금융은 물론 각 분야에서 정보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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