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4구역서 치안시설·미스터리 '소뼈' 발견
계획도시 증거…국가유산청·서울시 셈법 복잡
재개발을 앞둔 서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땅속에서 조선 시대 도시의 '골격'이 5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주거지 흔적을 넘어, 당시의 치안 시스템과 정교한 도로망, 나아가 용도를 알 수 없는 동물 매장 구덩이까지 확인돼 '보존이냐 개발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6일 국가유산청과 학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3년간 진행된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 사업부지(약 3만1000㎡) 발굴 조사에서 조선 전·중기 도시 인프라가 대거 확인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이문(里門)'의 실체다. 도둑이나 외부 침입자를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웠던 일종의 보안 게이트다. 세조실록(1465)에 "경성의 여항에 이문을 짓게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체가 드물었는데, 이번에 건물터와 함께 그 흔적이 명확히 확인됐다.
이는 해당 지역이 단순한 민가 밀집 구역이 아니라, 국가의 치안 시스템이 작동하던 계획된 행정 구역이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도로를 따라 정비된 배수로와 석축, 다리 흔적 등은 조선 전기 한양이 정교하게 설계된 계획도시였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다.
학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유구뿐만이 아니다. 발굴 현장 곳곳에서 최소 7~8마리 분량의 '소뼈'가 묻힌 구덩이(수혈)가 발견됐다. 특이한 점은 뼈의 상태다. 식용으로 도축된 뼈라면 조각나거나 열에 그을린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의 뼈들은 대부분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양도성 안에서 이런 형태의 동물 매장 흔적이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단순한 생활 쓰레기가 아닌 특수 목적의 의례나 전염병 폐기 등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정밀 분석을 진행 중이다.
발굴 조사는 일단락됐지만, 남겨진 과제는 만만치 않다. 이처럼 보존 가치가 높은 유적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개발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배수로는 현지 보존, 이문은 이전 보존으로 큰 틀은 잡혔지만, 종묘 경관 보호 문제까지 얽히고설키며 당국 간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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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과 서울시는 최근 실무진 회동을 진행했으나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유산을 보호하면서도 개발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서울시는 사업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땅속에서 깨어난 조선의 흔적들이 멈춰 선 재개발 시곗바늘을 다시 움직이게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족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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