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억압해 불안한 평형 유지"
미 국채 시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불안한 휴전'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 정부가 국채 금리 안정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채권 투자자들의 불만이 지속되는 만큼 지난 4월의 국채 금리 발작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10년물 국채 금리 폭등
로이터통신은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봄 겨우 봉합한 30조달러(4경3000조원) 규모의 미국 국채 시장과의 갈등이 되살아날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달 5일 이 같은 균열의 조짐이 관측됐다.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갑자기 6bp(1bp=0.01%포인트) 치솟은 것이다. 이는 최근 수개월 사이 최대 상승 폭이었다.
이날은 미국 재무부가 국채 장기물의 추가 발행을 시사하고 동시에 미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한 위헌 여부 심리를 시작한 날이다. 미 정부의 부채를 두고 시장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날 발표가 결정타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 국채에 적용되는 '기간 프리미엄'도 최근 몇 주 사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기간 프리미엄은 미 국채를 10년 보유할 때의 리스크에 관해 보상 차원에서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금리다.
채권 시장 뒤편에선 치열한 '기 싸움'
대형 은행과 자산운용사 임원 10여명은 최근 평온해 보이는 채권 시장 뒤편에서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현재 미국의 연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한다. 이를 메우기 위한 자금 조달이 계속되는 한 국채 시장은 언제든 '전쟁'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걱정거리는 '채권 자경단(채권 금리를 올려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견제하는 투자자들)'이다. 미 정부는 이들의 공세를 간신히 막아내는 상태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짚었다. 시네이드 콜튼 그랜트 BNY 웰스 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채권 자경단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시장에 있으며 행동에 나설 타이밍을 살피고 있을 뿐이다"고 강조했다.
채권 시장이 겉으로나마 평온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미국 경제의 회복력에 대한 신뢰가 있다. 대규모 인공지능(AI) 주도 투자 지출이 관세발(發) 성장 둔화 압력을 상쇄했다는 평가다. 또 고용시장 둔화로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 완화 정책 기조로 돌아선 것도 긍정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시장에 국채 금리의 폭등을 막겠다는 신호를 지속해서 보내고 있다. 특히 벤치마크인 국채 10년물은 정부 재정적자와 가계·기업의 대출 비용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우선 관리 대상이다. 이와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는 주요 정책 결정에 관해 비공개로 채권 투자자들의 견해를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12일 연설에서 "나는 미국의 1호 국채 영업사원"이라고 자처하면서 10년물 등의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장을 달랬다. 그는 지난 4월 미 국채 폭락 당시에도 국채 금리를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내며 구두 개입에 나섰다.
美정부, 장기금리 '상한선' 설정 논란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시장 관리 수단을 두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올해 7월 말 미 재무부는 유동성이 낮은 장기 국채의 발행 잔액을 줄이고자 '국채 바이백'(국채 조기 상환) 조처의 확대를 발표했는데, 이 조처가 10년·20년·30년 등 장기물 국채를 주 대상으로 삼으면서 시장에서는 '정부가 장기 금리에 인위적인 상한선을 씌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록펠러 글로벌 패밀리 오피스의 지미 창 CIO는 이 같은 상황을 "불안한 평형"으로 평하면서 "우리는 정부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국채 금리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금융 억압'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적자를 메울 자금을 조달하고자 국채 단기물의 유통량을 늘리고 있는데 이 역시 향후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될 경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단기 부채를 너무 늘리면 인플레이션으로 시중 금리가 오를 때 부채를 재상환하는 비용이 치솟는다는 것이다.
지금 뜨는 뉴스
스티븐 마이런 현 Fed 이사는 작년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재정적자 대책으로 단기 국채에 의존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현 트럼프 정부도 같은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로이터통신이 미란 이사에 논평을 요청하자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