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미래학자 비졸드 박사 인터뷰
AI, 현실세계 작동 '체화' 문제
美 빅테크 뛰어난 AI모델 만들어도
주행로봇·스마트선박 완벽 양산 필요
韓 정밀 조립 제조 역량만이 해결
韓 제조업 숙련공 'AI 지휘자'로 격상
기업, 로봇 창출 이익 노동자·사회에 환원해야
스마트신탁·국부펀드 모델 선제 도입 필요
정부, 노동 없는 사회 시스템 새 판 짜야
주거 의료 등 보편 기본 서비스 집중
세계적인 미래학자 클레멘트 비졸드(Clement Bezold) 박사는 아시아경제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가 야기할 제조업의 변화가 한국에 큰 기회가 될 것임을 예견했다.
그는 서면 답변을 통해 한국이 단순히 반도체를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AI를 현실세계에 '체화(Embodiment)'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문명국이라며 인간과 AI의 공존,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기업·정부의 과제를 제시했다.
◇'뇌'는 미국에, '몸'은 한국에 있다= 비졸드 박사는 한국이 해선 안 되는 전략적 오판으로 "미국식 소프트웨어 AI를 쫓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진짜 무기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AI를 물리적 시스템의 아키텍처 수준에 직접 심어버리는 '내재화(Embedded Substrate)'에 있다고 했다.
"AI가 디지털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기억할 반도체(메모리), 움직일 동력(배터리), 세상을 볼 눈(디스플레이) 그리고 이를 정밀하게 조립할 제조 역량이다. 전 세계에서 이 모든 '하드웨어 스택'을 국경 안에서 완벽하게 조달하고 통합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비졸드 박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반도체), LG에너지솔루션(배터리), 현대차(로보틱스), 한화오션(스마트 선박)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산업 포트폴리오를 '지능형 하드웨어 스택(Intelligent Hardware Stack)'으로 정의했다. 오픈AI, 구글 등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아무리 뛰어난 AI 모델을 만들어도 이를 탑재할 수천만 대의 자율주행 로봇과 스마트 선박을 오차 없이 양산해내는 '체화 문제(Embodiment Problem)'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한국은 바로 그 병목을 쥐고 있다는 게 비졸드 박사의 진단이다.
◇제조 숙련인력은 AI의 지휘자= 물리적 AI의 핵심은 기계만이 아니다. 비졸드 박사는 한국 제조업 현장의 숙련공을 물리적 AI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로 꼽았다. 그는 "미세한 용접 불꽃의 색깔만 보고도 품질을 판단하는 현장 직원의 경험은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암묵지(暗默知)이자 데이터"라면서 "한국의 물리적 AI 전략은 이들을 해고하는 게 아니라, AI 시스템의 '지휘자(Commander)'로 격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노동자가 기계를 직접 돌리는 '운영자'였다면 물리적 AI 시대의 한국 노동자는 수십 대의 로봇이 보내오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예외 상황을 통제하는 '현장 지휘관'이 된다. 이는 제조업 기반이 없는 서구 국가들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한국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미국이 자국으로 반도체, 조선 등 제조업 회귀를 추진하며 한국 기업의 손을 빌리려 해도, 한인 기술자가 없다면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물리적 AI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숙련공의 손과 두뇌가 기억하고 있는 정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그는 "기업은 사람을 기계로 대체한다"는 1차원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신 "기계가 육체노동을 가져갔다면 남은 인간의 지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숙련공들에게 AI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가르치고 그들을 고부가가치 데이터 관리자로 전환하는 교육 훈련을 통해 더욱 고차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업, 물리적 AI로 갈 사회적 허가 얻어야= 비졸드 박사는 과거 상상해왔던 완전한 실업이 현실화하는 것 같다고 했다. AI와 로봇의 발전으로 인류가 노동에서 해방된다는 내용의 완전한 실업은 비졸드 박사, 엘빈 토플러와 함께 '대안적 미래연구소(Institute for Alternative Futures·IAF)'를 열었던 짐 데이토 하와이대 교수가 제안한 개념이다.
비졸드 박사는 기업인들에게 "AI 도입으로 발생한 큰 이익에 대해 도입될 과세나 이익 공유를 '처벌'로 여기지 말라"고 조언했다. 물리적 AI가 벌어들이는 생산성의 과실이 주주에게만 쏠려선 안 된다고 했다. 로봇이 24시간 일하며 창출한 초과 이익의 일부를 노동자와 지역 사회로 환원하는 '스마트 신탁'이나 '국부 펀드' 모델을 선제적으로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비졸드 박사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물리 AI'가 가져올 '노동 없는 미래'에 대비해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금을 나눠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소득(UBI)보다 기본 서비스(UBS)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거, 의료, 교육, 교통 등 삶의 필수 요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 서비스' 확충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생존의 공포가 사라질 때 국민은 AI 시대의 변화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적인 정서상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사회적 기여'라는 새로운 명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베테랑 노동자들을 위한 '산업기술전수사(Industrial Technology Transmission Master)'나 '품질감시단'과 같은 공식적인 지위를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보호가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기술적 감독 기능으로 격상시켜 사회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인정 대체(recognition replacement)'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다. 비졸드 박사는 "한국의 유교적 인프라는 서구의 개인주의보다 거대한 AI 전환기에 훨씬 더 적합하고 강력한 토대가 될 수 있다"며 집단적 정체성을 활용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우리가 제조업으로 나라를 세웠듯 이제 AI 미래도 함께 관리한다'는 의미의 '우리' 정체성을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청년 세대(N포 세대)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다. 비졸드 박사는 "한국의 청년들은 실패자가 아니라 달라질 시대를 가장 먼저 받아들일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s)'"라고 규정했다.
지금 뜨는 뉴스
▲클레멘트 비졸드 박사는 누구='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 미래학의 대부 짐 데이토 하와이대 교수와 함께 1977년 '대안적 미래 연구소(IAF)'를 공동 설립하여, 막연한 예측을 넘어 조직이 원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염원적 미래(Aspirational Futures)' 방법론을 정립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지난 40여년간 백악관, 세계보건기구(WHO), 포천 500대 기업의 전략 자문을 맡아왔으며,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불확실성 속에서도 인류와 조직이 나아가야 할 최적의 항로를 제시하는 '예견적 리더십(Foresight Leadership)'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제12 KAIST 미래전략 대상을 수상했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I시대, 일자리가 바뀐다]"SW 쫓지 마라… 韓 제조능력 큰무기, 물리적AI 세계 지배할 것"](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6010200552475952_176728292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