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재무 압박 속
'경쟁' 사라진 발전사 분리 체제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를 왜 이렇게 (5개로) 나눠놨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이재명 대통령·지난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
"발전과 (전력) 판매, 송배전을 구분하고 발전사를 민영화하고자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시도했다가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 민영화가 좋은 방법이 아니겠다고 해서 (한전 아래) 자회사를 만들고 멈췄다."(이호현 기후부 2차관)
"(공기업) 사장만 5명 생겼다. 한전 발전 부문이 5개 자회사로 분할되면서 경쟁 효과가 발생했나."(이 대통령)
"전력을 한전이 혼자 구매하고 있기 때문에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경쟁 효과는 없었다."(이 차관)
이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정부가 남동·남부·중부·서부·동서발전 등 5개 발전공기업 통합을 검토하면서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20여년간 유지돼 온 발전사 분리 체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쟁 도입을 목표로 설계된 분리 구조가 에너지 전환과 재무 부담이라는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정책적 재검토가 본격화되고 있다.
전력 도매시장, 판매자(발전)과 구매자 여럿 만들어 시장경쟁 유도 계획
발전사 분리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에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한국전력이 발전·송배전·판매를 모두 담당하는 수직 독점 구조로는 효율성을 높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전력 도매시장(전력거래소)에서 판매자(발전사)와 구매자(소매상)를 여러 개로 만들어 시장 경쟁을 도입하고, 가격 신호를 통해 비용을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남동·남부·중부·서부·동서발전,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자회사와 전력거래소가 만들어졌다. 한전이 도매시장을 통해 발전 자회사와 새로 진입하는 민간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단순한 조직 쪼개기가 아니라 발전과 판매(배전)는 경쟁 영역으로, 송전은 자연독점 영역으로 구분하는 시장 친화적 전력산업 구조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였다. 그 다음 단계는 전력 도매시장에서 구매 역할과 소매시장에서 판매 역할, 즉 소매상 역할을 하는 한전의 판매 부문을 여러 개로 쪼개는 것이었다. 그러면 소매시장에서도 여러 판매자가 경쟁하게 돼 최종 수요자인 기업과 가계가 더 싼 가격에 전기를 쓸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발전 자회사 구조개편의 최종 목적지는 명확했다. 발전 자회사 간 경쟁을 정착시킨 뒤 발전 부문 민영화로 이어지는 단계적 개편이었다. 실제로 발전 자회사 매각 시점과 방식까지 정부 내부에서 검토했다.
중간에서 멈춘 발전사 민영화, 분리에 그쳐 기능중복·비효율
문제는 이 구조개편이 끝까지 완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발전사 분리는 이뤄졌지만 한전의 판매 부문 분리는 무산됐고 발전 부문 민영화는 추진되지 않았다. 단일 전력시장과 단일 송·배전망 구조 역시 유지됐다. 결과적으로 발전사 간 경쟁은 제도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5개 발전사는 한전 아래 자회사 체제로 고착됐다.
이후 20여년간 발전 부문은 '경쟁을 전제로 설계된 구조'와 '경쟁이 제한된 현실'이 공존하는 중간 단계 상태에 머물렀다. 발전원 개발, 연료 조달, 해외사업, 연구개발(R&D) 등에서 유사한 기능이 사별로 중복되며 비용과 비효율이 발생했고, 분리의 명분이었던 경쟁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쌓였다.
이 같은 전력산업 구조적 문제는 최근 대통령의 업무보고 발언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의 의문처럼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발전사 분리 체제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석탄발전 감축,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변동성 확대, 재생에너지 투자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며 발전공기업의 재무 부담이 커졌다. 올해 기준 주요 발전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남동발전이 110.6%, 남부발전 121.5%, 동서발전 84.7%, 서부발전 135.5%, 중부발전 171.1%로 집계돼 재무 부담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전력업계에서도 "경쟁을 위해 쪼갰지만 경쟁은 제한적이었고, 이제는 규모의 경제까지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분리 당시 기대했던 효율성 제고보다 중복 투자와 관리 비용 증가가 더 크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이 크게 오르면서 석유화학 업계를 중심으로 전기를 한전을 통하지 않고 발전회사들로부터 직접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발전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민간 발전사를 허용하면서 현재 수십 개의 민간 발전사들이 운영되고 있다.
민간 발전사들 역시 발전 공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한전에 전기를 팔아왔는데 윤석열 정부는 대규모 전력 사용자들에게는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직접 구매하는 것을 허용했다. 판매 시장에서도 일부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전력거래 시장 역할 애매한 전력거래소
이런 논의의 끝단에는 전력거래소 문제가 놓여 있다. 전력거래소는 발전 자회사 간 경쟁을 전제로 전력을 거래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경쟁이 제한적인 구조가 고착되면서 현재 역할은 시장이라기보다 계통 운영과 정산을 담당하는 관리기관에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발전사 통합이 현실이 되면 전력거래소의 기능과 위상 역시 재정의가 불가피하다. 경쟁을 전제로 만든 제도를, 경쟁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구조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다음 단계의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전력 직접 구매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일각에선 발전사 통합 논의가 과거 분할 정책의 단순한 부정이나 되돌림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당시 분할은 경쟁 도입이라는 정책 목표 아래 선택된 수단이었고, 현재 논의는 에너지 전환과 공급 안정이라는 새로운 정책 환경에 맞춘 구조조정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다.
향후 통합 논의는 전력산업을 경쟁 중심으로 운영할 것인지, 공공성과 안정성을 중심으로 재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발전공기업뿐 아니라 전력시장 전반의 구조도 함께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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