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SF·드라마 넘나들면서 중심 서사 놓쳐
침수 연출 인상적이나 감정적 설득 약해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는 침수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물에 잠기는 아파트라는 설정이 시선을 끈다. 한국 재난영화에서 흔치 않은 소재다. 초반부는 장르 영화의 기본기를 충실히 따른다. 재난 상황의 밀도가 비교적 잘 유지된다.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전개 역시 설득력이 있다. 차오르는 물, 비좁은 계단, 가스 폭발 등이 실시간으로 위협을 만들어낸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인물들이 생존을 모색하는 과정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안나(김다미)는 유치원생 아들과 함께 이 아파트에 고립된다. 인공지능연구소 인력보안팀원 희조(박해수)가 재난 현장을 통과해 접근하면서 이야기는 탈출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 보인다. 그의 등장은 외부 세계와 고립된 공간을 잇는 통로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이 지점부터 영화는 방향을 잃는다. 안나의 아들이 인류 생존 프로젝트의 실험체라는 설정이 드러나며, 서사의 축이 급격히 이동한다. 특수 유전자 변이와 비밀 연구라는 새로운 설정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 전환을 떠받칠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재난영화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질문은 '어떻게 살아남는가'이고, SF 스릴러에서 요구되는 질문은 '왜 쫓기고 있는가'다. 두 질문은 서로 다른 서사의 동력을 필요로 한다. '대홍수'는 전자에서 후자로 이동하면서, 두 질문 가운데 어느 쪽도 제대로 붙들지 못한다.
아이의 정체는 영화의 핵심 정보다. 그러나 그 특별함은 서사로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 희조의 설명과 안나의 기억을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재난 상황과 유기적으로 엮이지도 않는다. 아이를 끝까지 따라가야 할 이유에 설득되기 어렵다.
설정이 늘어날수록 대사는 많아지고, 반대로 탈출의 긴장과 재난의 물리성은 희석된다. 인물의 감정선도 다르지 않다. 초반 안나는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아들을 업고 탈출구를 찾으며 능동적인 선택을 이어간다. 그러나 중반부턴 '특별한 아들을 지키는 보호자'로 역할이 축소된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만 남을 뿐, 왜 그 선택이 절박한지에 대한 감정적 설득은 충분히 쌓이지 않는다.
희조 역시 마찬가지다. 회수 임무를 받은 요원과 양심적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설정되지만, 내적 갈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 공백은 결말에서 약점으로 나타난다. 모성애라는 보편적 정서에 기대며 감정을 환기하는 데 그친다. 영화가 구축해온 세계의 특수성은 끝내 선명해지지 않는다.
서사적 한계는 분명하지만, 기술적 성취는 눈에 띈다. 물의 질감과 빛의 굴절 등 침수 장면의 구현이 인상적이고, 수중 촬영의 완성도도 높다. 폐쇄된 공간을 적극 활용한 연출로 제한된 환경의 긴장도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한국 영화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도전으로, 넷플릭스가 한국 SF와 재난 장르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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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면의 완성도가 이야기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홍수'는 장르를 묶는 중심축인 서사를 끝내 확보하지 못한다. 초반에는 생존, 중반에는 음모, 후반에는 모성이 중심이 되며 이야기의 초점이 분산된다. 이는 장르의 과잉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각 장르의 문법을 존중하기보다 나열하는 데 그치고 만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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