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NEXT K' 분기점으로 제시
AI 리셋·IP 리그 등 산업 구조 재설계
단기 흥행에서 체력 중심 정책으로
정부가 2026년을 K콘텐츠의 성장이 아닌 방향을 결정하는 분기점으로 규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NEXT K 2026'에서 내년을 K콘텐츠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골든 타임'으로 내다봤다. 단기 성과를 넘어,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구조 전환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판단이다.
유현석 콘진원 원장 직무대행은 "2026년은 K콘텐츠가 위기를 넘어 지속 가능한 NEXT-K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송진 콘진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장도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넥스트 K'로의 도약을 결정하는 시간"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망은 새로운 유행이나 장르를 예측한다기보다, 이미 형성된 변화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 방향 제시에 가깝다. 이처럼 설정된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누적된 변화가 있다. 생성형 AI 활용이 제작 현장 전반으로 확산했고, 지식재산(IP)은 단발 흥행을 넘어 반복·확장 구조로 이동했다. 글로벌 시장 역시 단일 권역 중심에서 벗어나, 현지 감정과 문화적 연결을 중시하는 국면으로 바뀌었다.
콘진원은 이 변화들이 개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동시에 성숙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2026년을 기점으로 K콘텐츠 산업이 선택해야 할 방향을 몇 가지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AI 리셋'이다. 송 센터장은 "창작자의 역량과 역할이 변하고 있다"며 "AI 콘텐츠 전략, AI 콘텐츠 엔지니어 같은 새로운 직무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활용 여부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정책 지원은 확대된다. 구경본 콘진원 경영전략본부장은 "2026년 예산은 전년 대비 8.2% 늘어난 7050억원"이라며 "AI 활용 콘텐츠 제작 지원을 188억원, 과제 쉰 개로 대폭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어 "191억원 규모의 AI 특화 콘텐츠 아카데미를 신설해 AI 맞춤형 창의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콘진원은 AI 확산에 따른 저작권과 데이터 거버넌스, 공정 이용, 수익 배분 구조의 재설정 필요성도 함께 제시했다. 송 센터장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단순 직무는 상당 부분 AI로 대체되는 반면, 서사와 방향성을 설계하고 미학적 판단을 내리는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복·정형 업무의 재편과 함께, AI 활용 역량을 중심으로 한 직무 구조 개편과 인간의 창의성·AI 생산성을 결합한 제작 체계 재설계가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향후 기술 도입 여부를 넘어, 콘텐츠 산업의 작동 구조 자체를 다시 짜는 문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두 번째 축은 '콘텐츠 IP 리그'다. 송 센터장은 "독자적인 세계관과 고정 이용자층을 확보한 IP가 스포츠 구단처럼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모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나 혼자만 레벨업'을 언급했다. 웹소설에서 출발해 웹툰과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로 확장되며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콘진원은 IP를 개별 기업의 소유 자산이 아니라, 산업 전반이 함께 확장하는 순환 구조로 정의했다. 고유한 세계관과 팬덤을 보유한 IP를 중심으로, 이종 산업과의 협업과 멀티 포맷 전개, 연관 산업 확장이 반복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특정 기업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시장 전체의 관심과 이용 경험을 넓히는 방식으로 IP 가치를 축적하는 전략이 중요해진다. 콘텐츠 산업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25 서울헌터스 페스티벌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 수록곡 '소다팝' 포인트 안무를 따라 추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전략의 핵심으로는 'HIP 2.0'을 제시했다.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 인바운드 허브(Inbound Hub), 파트너십(Partnership)을 결합한 개념으로, 단순한 번역이나 유통 확대를 넘어 현지의 문화와 정서적 연결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송 센터장은 "해외 이용자가 K콘텐츠에 담긴 고유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번역과 편집, 연출 방식이 한층 세밀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언어 제작과 국가별 감성에 맞춘 버전 변환, 현지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시청자와 콘텐츠를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중요해졌다는 인식이다.
유 원장 직무대행은 "해외 비즈니스센터 서른 곳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월컨 마켓플레이스(한국 콘텐츠 기업과 해외 바이어를 온라인에서 연결하는 디지털 수출 장터) 기능을 강화해, 콘텐츠 기업들이 국내에서 전 세계 바이어를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26년 콘텐츠 산업을 떠받칠 핵심 기반으로는 '애착자본'과 '팬 릴레이션십'이 제시됐다. 송 센터장은 "팬의 애정은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을 움직이며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사랑과 배신은 한 끗 차이"라고 표현했다. 팬 참여형 플랫폼 운영과 투명한 소통, 일관된 콘텐츠 정체성을 통해 신뢰를 축적하는 과정이 장기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단기 성과에 매몰될 경우 팬의 기대가 무너지고, 그 여파가 곧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다. 이는 수익 모델 이전에 관계 관리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콘진원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단기 흥행을 보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산업의 체력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겼다. 구경본 콘진원 경영전략본부장은 "R&D 분야에 454억원, 게임 분야에 101억원을 투입하는 등 AI와 연구개발 중심의 미래 성장 분야에 지원을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제작 효율을 높이는 기술 도입과 함께, 창작 역량을 지속해서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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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원장 직무대행은 "콘텐츠 산업은 기술 환경과 글로벌 시장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며 "K콘텐츠가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중장기 관점의 정책 지원과 산업 기반 강화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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